긴긴 그리움에 끝엔...
심사평
이 작품은 ‘나로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과 두려움, 환희를 단순하지만 깊이 있게 보여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고통과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제 어린 펭귄은 자기 몫의 두려움을 끌어안고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것이다.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낼 것이며, 긴긴밤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것이다.
(책 내용에서는 ‘어린 펭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로운 발상으로 작가의 시선
에서 ‘노든’의 시점에서 쓰인 편지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지구상에서 나와 숨을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녕. 나는 ‘노든’이라는 코뿔소야. 나는 ‘코끼리 보호소’에서 태어났어.
그곳은 가족을 잃은 어린 코끼리들을 보호하려고 사람들이 만든 곳이야.
나는 그렇게 코끼리 무리 속에서 그들의 보살핌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며 자랐어.
시간이 지나 나는 사람들에 의해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었지. 그리고 나는 아내와 딸을 얻어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어. 가족은 나의 삶에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어.
그러던 어느 날, 무자비한 인간들에 의해 아내와 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나는 다리에 총을 맞고 회복을 한 후, 어느 동물원에 가게 되었지.
그곳에서 나와 똑같은 ‘앙가부’라는 친구를 만났어. 그리고 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앙가부와 작전을 짜고 동물원 밖을 빠져나가 인간들에게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었어. 철조망을 끊고 시도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하고 말았지.
나는 다리에 총을 맞은 거 때문에 다시 마취 주사를 맞아야 했어.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나의 친구 앙가부 역시 하늘로 올라가 다시 볼 수 없음을...
나의 뿔은 인간들에 의해 반쯤 잘려 나가 있었지.
동물원 사람들은 나를 마지막 남은 ‘흰 바위 코뿔소’라고 온갖 정성을 쏟았어.
그치만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어. 전쟁이 일어났거든. 하늘엔 희뿌연 연기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았어. 그러다가 내 발밑으로 양동이를 입에 문 채 하나의 ‘알’을 담고 지나가는 펭귄 한 마리를 보았어.
‘치쿠’라는 펭귄이야. 치쿠는 그 ‘알’을 지키고 있었어.
얼마 전, 치쿠는 내가 살았던 그 동물원에서 하나의 ‘알’을 발견했다고 해. 그 무리에서 볼 수 있는 깨끗한 하얀색 알이 아닌 검은 반점이 있는 불운한 그 알을 친구들은 멀리하고 피했어.
치쿠는 자신과 각별한 ‘윔보’와 그 알을 돌보기로 했어. 젊은 아빠 둘이 그 알을 번갈아 가면서 품어 주었지.
그렇게 지내다 전쟁이 오고 윔보는 알을 품고 있는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
치쿠는 윔보가 품고 있던 알을 꺼내 도망쳐 나온 거야.
치쿠에게 윔보는 어렸을 적에 다친 오른쪽 눈 같은 존재였어. 항상 자신에 오른쪽 옆에 있어서 치쿠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 주었으니까. 치쿠와 윔보는 각별한 인연이었어.
불구덩이가 피어오르고, 피를 흘리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윔보를 보고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치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는 또 악몽을 꾸게 될까 봐, 치쿠와 잠들지 못하는 ‘긴긴밤’이 시작되었지.
치쿠는 악몽을 꾸지 않게 해주는 최고의 길동무였어.
나는 치쿠와 그저 앞을 보며 걷기만 했어. 그러다 목적지가 생겼지. ‘바다’라는 곳이야.
치쿠가 말하길 바다는 저 위의 하늘과 비슷한 곳이라 했어. 치쿠는 바다에서 다른 친구들과 멀리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어.
우리는 다시 긴긴밤을 지새우며 걷고 또 걷다가, 깊은 잠에 빠졌어.
곤히 잠들고 있는 치쿠를 건드려 보았는데, 움직이지 않았어. 치쿠가 죽.었.어.
슬퍼할 새도 없이 치쿠가 살뜰히 따스하게 챙겼던 그 알을 보았어.
나는 수풀을 찾아 그 알을 감싸주었어.
치쿠는 죽기 얼마 전,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알’을 꼭 돌봐 달라고 했거든.
나는 그 약속을 지켜야 했어.
어두워진 하늘, 반짝이는 별들의 하늘 아래서 그 ‘알’의 알껍질이 깨지고 ‘아기 펭귄’이 태어났어.
나는 아기 펭귄에게 먹이도 주고 보살펴 주었지.
그렇게 나와 '어린 펭귄' 우리는 같이 걸었어.
그렇게 걷던 중 인간들이 몰고 오는 트럭 소리가 들렸지. 지난 아픈 기억에 나는 그 인간들을 향해 돌진했어. 인간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았어. 어린 펭귄 날개에 총알이 스쳤어. 난 어린 펭귄을 입에 물고 달렸어.
어린 펭귄은 겁에 질려 다신 복수 하지 말라며 당부했지. 그 말에 나의 마음은 많이 누그러졌어.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어린 펭귄뿐이니까.
나는 어린 펭귄을 안아 주고, 어린 펭귄이 태어나기까지 지난 이야기들을 해주었어.
그러다 또 트럭을 보게 되었어.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어린 펭귄과 트럭에 실려 갔어.
인간들은 우리를 푸른 초원에 데려다 놓았어. 예전에 앙가부가 한 말이 생각이 났지.
세상에는 좋은 인간들도 있다고.
그렇게 몇 번의 밤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어린 펭귄을 보내기로 했어.
어린 펭귄은 그렇게 나를 떠나 바다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어.
어린 펭귄은 파란 지평선이 보이는 그곳에 도착했을 거야.
나도 언젠가는 어린 펭귄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몰라.
그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 보아도 한눈에 그 어린 펭귄을 알아볼 수 있거든.
그렇게 우리가 만나서 마주 보게 된다면 코와 부리를 맞대고 그렇게 인사할 거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부모와 함께 살아온 둥지 밖을 나오면서 독립을 하거나 각자의 가정을 이루는 것처럼.
코끼리 보호소에서 바깥세상으로 나간 ‘노든’과 푸른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어린 펭귄’.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목적과 그 방향에 따라 ‘떠남’을 선택했다.
떠난다는 것은 사무치는 그리움, 슬픔 또는 쓸쓸함만을 남기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에 그리움이 남는다면, 그들은 재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더욱더 값진 만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애틋한 그리움의 약속이 아닐까?
서로에게 각별했지만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이별을 맞은 ‘치쿠’와 ‘윔보’ 가 별빛이 내리는 하늘 어디에선가 꼭! 만나기를.
‘노든’과 ‘어린 펭귄’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적이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