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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Sep 25. 2023

무거운 커피잔

버릴까 하다 가져온 찻잔이 주는 행복 

왜 이리 무거운지... 한 손으로 들기에 무거운 커피잔이 볼 때마다 "내가 이걸 왜 샀지? 6개씩이나?" 


그런데 그 커피잔이 이제는 나의 애착 커피잔이 되었다. 


이삿짐을 싸던 날 버릴 짐과 가져갈 짐이 거의 반반 수준으로 끊임없이 가져다 버렸다. 


평수를 줄여서 가는 이사다 보니 잡스러운 것과 손을 잘 대지 않는 것들은 웬만하면 다 버렸다. 


큰 고민 없이 이사박스와 종량제 봉투를 놓고 이리저리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그중 한 손으로 들기 무거워 쓰지 않는 커피잔을 버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과연 내가 이 잔을 쓰게 될까라는 마음에 잔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꼭 커피잔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 나를 사놓고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지, 그러니 새집으로 가서 날 제대로 써봐."


고민을 멈추고 이사박스에 커피잔을 넣었다. 


 

이사를 마치고 잔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깨끗하게 닦고 정리된 커피잔을 보며 


'이왕 가져온 거 커피라도 내려 마시자'라는 생각으로 커피를 내렸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며 따가움이 느껴졌다. 


5분이 지나니 아지랑이가 현란한 춤을 멈추고 가라앉았다. 



따뜻한 커피를 입 안에 한 모금을 넣었을 때 입 안 가득 퍼지는 온기에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커피잔에 남은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넣어도 미지근한 온도가 내 입을 감쌌다. 


그 이후로 뜨거운 커피를 내려마실 때는 이 갈색잔을 자연스레 꺼낸다. 


여전히 두껍고 무거운 유리잔이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버겁지만 따뜻함이 오래 유지된다. 


마지막 한 입까지 말이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내가 버렸다면 느끼지 못했을 이 따뜻함도 내가 만든 행복이라고 말이다. 


행복은 멀리 있다고 느꼈다. 


굉장한 노력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대단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고 내가 만들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것,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행복이 늘 있었다. 


다만 내가 힘들고 지쳐 그것을 볼 줄 몰랐던 것뿐이었다. 



쓸쓸하지만 운치 있는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가을은 쓸쓸함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계절 중 하나인데 가을이 주는 운치는 따라올 계절이 없다. 


쓸쓸하다고 외면하기엔 너무 강력한 매력을 지녔다. 


어제만 해도 더웠던 아침이 오늘은 냉기를 머금은 건조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유난히 피곤한 월요일 아침, 갈색잔을 꺼내 따뜻한 커피를 내려마시며 행복을 느껴본다. 


누군가와 함께 했으면 아쉬움이 드는 순간이었지만 잠깐의 통화로 충분히 행복을 느꼈다. 


꼭 같이 커피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이 나한테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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