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웨이트 트레이닝을 만나기 전
이른바 쇠질을 시작한 지 햇수로 6년이 되었다. 평균 주 6일. 하루 두 세 시간씩 짐에 출근해왔다. 위의 세 문장은 조금도 과장이 없다. 담담한 회고이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과정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 단순하지도 규칙적이지도 않았다. 내가 여기에 글을 적는 이유는 여기서 시작한다. 사십 대 후반을 넘어 오십 대에 접어든 한 평범한 남자의 사념을 그의 쇠질의 시간과 포개어 나누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지루한 반복은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생성한다. 나는 그 차이에서 또 다른 차이로 나아가다 만나게 되는 동일성을 찾아내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밝혀두어야 할 것은 이렇게 저렇게 우왕좌왕하며 돌아온 그 시간 속에서 내 몸의 변화는 별반 자랑할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운동하기 전에 샀던 옷을 여전히 입을 수 있다. 현재 체중은 운동 전과 비교해보면 겨우 4~5kg 정도 늘었다. 게다가 쉰이 넘은 나이에 특별히 건강해졌다 할 것 또한 무엇이겠는가. 2023년이 되면 주민등록증 상의 나이로 쉰둘이 된다. 그렇다. 변화란 시간의 함수다. 노화만 남았고 그리고 진행 중이다.
체육관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체육관'이라 우선 적어본다-이라는 곳에 6년 전 처음 들어선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친구 따라 역도부 동아리방도 몇 번 기웃거렸던 기억이 나고 이십 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운동해볼 요량으로 회원 등록을 했던 체육관도 다섯 손가락은 쉽게 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모두 채 한 두 달, 횟수로는 네댓 번이나 들렀을까, 그곳에 새로 산 신발이나 옷가지, 샴푸, 로션 등을 어떠한 미련도 없이 기증한 전력만이 있으니 이를 경력이라 할 수는 없을 터. 아마 나만의 기억은 아니기를.
생각해보면 운동은 안 할 망정 개인 락커에 처박아 놓은 신품 냄새 풀풀 나는 물품이라도 챙겨 왔으면 좋았을 터이지만 그것도 뭐랄까, 겸연쩍어하지 않았다. '않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데 내 심리 상태에서 보면 '못한 것'이었다. 왠지 그 체육관 앞을 지나칠 때면 마치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종종걸음을 걷게 되는, 따라서 그곳에 위치한 나의 물품도 불현듯 어떤 악행의 증거라도 되는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외면은 응시하는 것보다 늘 쉬웠다. 뒤끝은 씁쓸하지만.
구차하지만 더 변명을 해보자면 천성상 혼자 하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차라리 사람들과 어울려 뛰어다니는 축구나 농구 같은 단체 구기 종목이 더 좋았다. 그러나 이십 대 초반 이제는 고질이 된 치질이 심하게 도졌고, 삼십 대에 접어들자 고교 시절 부상당한 오른쪽 슬개골이 일기 예보를 대신하는 수준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마흔 살 무렵까지 책상 받이 서생으로 지내면서 우상향으로 체중은 증가하여 군살이 아랫배부터 뒤룩하게 오르고 셔츠 단추는 갈수록 타이트해졌다. 모니터와 한 몸을 이룬 등과 목은 굽고 어깨는 아름드리나무를 껴안을 듯이 늘 앞으로 말려 이내 디폴트로 굳어버렸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단련이 필요한 일종의 무공인지라, 치질은 그 절차탁마의 증좌처럼 불치병이 되어버렸고 엉덩이 근육은 장렬히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다. 회생이 필요한 것이다.
쇠질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운동이란 것을 하게 된 시기와 종목을 먼저 이야기해보면 좋을 듯하다. 그러니까 갓 마흔 살이 되었을 무렵 어린 딸아이가 집 근처 올림픽 생활관으로 검도와 수영 등을 배우러 다녔던 까닭에 나는 그녀의 시간에 맞춰 거의 매일 배웅과 마중을 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운동이야 남의 사치나 그저 딸내미 사교육의 하나로 취급하는 그런 편견이 있었고, 그런 나의 시선은 당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따라 유독 무료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딸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에 대기실에서 빈둥거리며 책 읽는 시늉이나 하느니 뭔가 나도 하나 배워볼까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커다란 알록달록한 프로그램 팜플렛을 살펴보니 수영 초급반 시간이 그녀의 검도 시간대와 맞아 떨여졌다.
뭐, 나도 하나 배워볼까...?
그렇게 나의 운동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물, 물은 어려서부터 좋았다. 동네 똘과 방공호, 천변에서 깨 벋고 했던 어린 벗들과의 물놀이 기억은 격한 쾌감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발버둥과 자맥질이었지만 적어도 물에 빠져 죽지 않을 자신감도 주었다. 그렇다고 그 행위를 수영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우연찮게 시작한 수영을 사오 년간 지속하게 된다. 수평 운동이라 삼십 분만 걸어도 뇌 속까지 충혈을 만드는 치질의 고통과 싸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이후 그것은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나름 합리적 가정에 속으로 환호 작약하면서 말이다.
이 수영이란 운동은 나의 천성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어쩌면 천성을 뒤늦게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밝혔듯 나는 단체 운동을 좋아했다. 그러나 수영은 전형적인 '독자적 운동'이다. 여기서 독자적이란 전술과 전략, 그에 따른 전형이나 순간적 기지, 동료와의 호흡을 위한 자기희생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수영의 경우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몸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며 물을 타야 한다. 물론 뒷 사람이나 앞 사람과의 간격을 신경써야 하지만. 자신의 페이스 pace를 찾아내고 그것을 조금씩 속도의 관점에서 밀어붙이는, 들숨과 날숨 속의 연속된 자기에로의 침잠 과정이 수영이다. 운동이라 함은 단체 종목처럼, 아니 설사 개인 종목이라 하더라도 경쟁을 기초로 한 게임의 성격이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야 하며, 동시에 특정 동작이나 부위만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움직임을 피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정의하는 운동은 과거와 달리 상대가 나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기본값이 된다. 그리고 신체 전반을 균형 있게 움직이는 일관된 동작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좁게 제한된다. 대표적으로 달리기나 수영이 여기에 속한다. 달리기는 중력 방향과 싸우며 수평으로 이동하는 몸부림이고, 수영은 그 중력을 물의 부력으로 어느 정도 상쇄하며 물의 저항과 수평으로 싸워가며 이동하는 몸부림이다. 상대가 나 자신인 가장 원초적인 활갯짓, 그게 운동의 근본이란 것을 깨닫는, 아니 스스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된 것이 수영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운동을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