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웨이트 트레이닝을 만나기 전
수영은 좋은, 아주 근사한 운동이다. 유아풀에서 물장구치는 우스꽝스러운 초급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대망의 25m 성인 풀에 입성하고 각종 영법의 기초를 몸에 익혀가는 중급반 시기는 가장 의욕적인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일이 년의 시간이 지나 상급, 최상급반이 되어서 어느덧 약 45분 남짓의 운동 시간에 25m 풀을 평균 왕복 40 바퀴 정도 돌게 되는, 그러니까 약 2km 정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니지, 그 상태에 이르는 과정은 또 다른 밑 작업이 필요로 했다. 그것이 앞서 언급한 달리기다. 일주일 가운데 월수금 수영 수업을 받고 어느 순간부터 화목토 시간에는 트레드밀 위에 올라가 달렸다. 처음에는 7km 그리고 10km, 12km, 15km. 점차 시간과 거리를 늘려가며 말이다. 치질이 도진 이후부터 절대 뛰지 않겠다던 자기 혐오성 각오도 단번에 내팽개치고 치핵이 튀어나오고 엉덩이로 모든 피가 쏠리는 더러운 신체적, 감정적 상태에서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이유는 최상급반 선두 그룹의 속도를 따라가야만 했던 까닭이다. 그들은 절대 갓 승급한 새내기들을 배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운동량을 만족시킬 속도와 저항 값을 세팅해 놓고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뒤쳐지는 갓 올라온 신입에게 돌아오는 것은 선두 그룹의 무언의 눈총과 뭐 거기에 동조하는 듯 슬쩍 새내기들을 쳐다보며 떨떠름하게 입맛을 다시며 귓가를 때리는 코치의 건조한 명령뿐이었다. "자, 다시 아이엠 4회 반복하시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는 노래 가사가 아니다. 이들 선두 그룹은 문자 그대로 늘 출석했고 늘 앞에 섰으며 늘 경탄이 나올 실력으로 물을 탔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물을 타고 싶었는데 이를 위한 디폴트 값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기초 체력이었다. 어떤 스포츠건 체력은 기술보다 항상 우선한다.
나는 선두 그룹의 눈빛을 자양분 삼아 비장하게 트레드밀 위에 올라서야 했고 어느 순간 말 그대로 달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그 선두 그룹에 끼었는가 하면 그것은 결코 절대 네버 아니다.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절대로. 이유는 최상급반으로 승급한 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만두게 되어 늘 내 뒤로 선 자는 두세 명을 넘지 않았다. 늘 도돌이표처럼 인원은 제자리였고 나는 선두 그룹의 널따란 등짝과 유려한 킥을 물안경 너머로 보며 마치 처음처럼 허겁지겁 몸부림을 쳐야 했다. 저 도도한 선두 그룹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멤버가 바뀌지 않았지만 내 뒤로는 끊임없이 바뀌어 나갔다. 선두 그룹은 늘 최상급반에서 자신의 강력한 킥과 스트로크를 자랑했고 새내기들은 말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며 헉헉대다 사라져 갔다. 나는 당시 그들의 운동 능력은 부러웠지만 그들의 배려 없음은 경멸했다. 저들은 말하자면 그레샴 법칙에서 말하는 악화였다. 최상급반의 시스템을 장악하고 선순환을 간교하게 막아버리고 있는 악한들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어떤 조직에서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을 자주 보아왔지만, 양화가 악화만큼 악착같이 조직 내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양화는 지나치게 고결하고 쉽게 조직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악화는 그들의 쉬운 포기만큼 비례하여 더욱 강화된다.
어찌어찌해서 그들의 뒤꽁무니라도 숨을 돌리며 좇아 다니게 되면, 그 상태는 어떤 것일까. 앞서 말한 독자성은 희미해지지만 운동 능력은 그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처음엔 뭐랄까, 갱생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승급 대상으로 호명되어 클래스를 옮길 때마다 으쓱하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다. 자신감도 높아진다. 죽어있던 엉덩이는 되살아나고 허리 라인에 군살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된다. 토할 것 같던 호흡도 어느 순간 열띤 쾌감으로 받아들일 만큼 탁 트이게 된다. 바로 이거다. 인생의 운동을 찾았다! 이 운동을 죽을 때까지 하리라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조심하라, 모든 확신과 다짐은 모든 후회와 죄의식의 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