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의 기제를 파헤치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평소 무엇을 보고 웃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씩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즐겨보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것 같은데요. 자타공인 TV 애청자 복길은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던 예능 시청기를 집요하게 기록했습니다. 아마 일반적인 한국 예능 시청자라면, 본인이 지금까지 봤던 한국 예능 대부분에 대한 코멘터리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들여 이야깃거리를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꼼수 가득한 생각으로 이 책을 발제 도서로 택했고, 예상대로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요. 능력이 부족해 제대로 정리를 못하겠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혹 본인이 했던 이야기가 왜곡됐거나 누락되었다면 정정 요청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대종상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TV키드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중후반부터는 페미니즘 이야기더라. 후반에는 ‘이 사람의 생각이 이렇구나’ 하면서 읽었다.
은: 예능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 소개된 ‘편성표를 자르고 매직으로 표시’하는 친구가 내 학창 시절 모습이었다. 예능에서 여성이 이렇게 적게 나오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관심 없어서 후루룩 넘긴 부분도 있었고, 유재석·신동엽·나영석 등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광: 예능 비평서로 보자면 아쉬웠다. 예능 비평에 대해서는, 〈무한도전(이하 무도)〉에 이경규가 나와서 〈무도〉에 대해 말하거나 할 때가 재미있었다.
정: 남자들이 떼거리로 나올 때부터 예능을 안 봤다. 특히 〈아는 형님〉이 싫다. 이 책이 재미있다는 얘기는 여기저기에서 들었다. 앞부분 읽을 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가 본격적으로 예능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재미있어졌다. ‘산다라 박 핫도그’ 부분이 가장 웃겼다. 산다라 박 뒤에서 이효리가 그를 쳐다보는 표정이나, 〈나는 자연인이다(이하 자연인)〉에서 이승윤의 표정 같은 걸 디테일하게 짚어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백종원에 대해서 한마디도 없는 게 아쉬웠고 한국 예능의 한 갈래를 배제한 느낌이 들었다.
영: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나와 취향이 완전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름 페미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난 남성주의적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1박 2일〉에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 좋았는데, 저자는 이에 대해 다르게 말하더라. 마지막에 여성 예능인을 한 명 한 명 읊어주는 부분에서는 울컥했다.
(은: 그 부분에서, 이전에 박미선이 연말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나서 여성 연예인으로서의 소감을 밝히며 울컥했던 게 생각났다.)
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드라마 본방사수를 포기했고, 아무 때나 봐도 되는 예능을 많이 보게 됐다. 예능을 보면서 내가 불편하다고 느꼈던 지점을 이 책이 잘 짚어줘서 통찰력 있다고 느꼈다. 경상도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경상도 관련 포인트가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1년 동안 방에 갇혀 있었다고 한 부분(〈겟 잇 뷰티〉 관련)도 흥미로웠다. 나영석 PD 부분에서는 ‘무도빠’로서 나영석 PD 작품에서 느꼈던 불편함-감동 유도, 군림하는 느낌 등-이 생각났다.
현: 예능을 많이 많이 보는 편이다. 책에 언급된 예능도 거의 다 봤고, 〈무도〉와 〈1박 2일〉도 번갈아 가며 봤다. ‘내가 왜 이걸 이렇게까지 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둘 다 놓게 됐지만. 〈프로듀스 101(이하 프듀)〉에 대해 짚은 부분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 좋았다. 결국 페미니즘 책인데, 그 면이 좋았다. 요즘 예능이 불편해진 것도 남자들의 시끄러움 때문이라는 점에서.
경: 복길(님)이 대종상 중계를 하며 트위터에서 유명해졌을 때부터 팬이 됐다. 〈아무튼, 예능〉이 나온다고 해서 기대가 컸고, 그의 트윗을 모아서 읽는 느낌이라 좋았다. 모든 꼭지가 다 재미있었는데, 저자의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케이팝·아이돌 예능을 주제로 한 부분이 돋보였던 것 같다. 한국 코미디에 대한 비판도 좋았고, 예능인 및 피디에 대한 비평도 훌륭했다. 특히 나영석 편이 정말 속 시원했다.
은: 〈자연인〉을 부모님이 항상 틀어놓으신다.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 왜 굳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계신가 했는데, 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보시는 거더라.
정: 책의 강호동 부분 정말 공감하며 읽었다. 나도 〈무릎팍도사〉는 정말 열심히 봤었다. 최근 예능 중에서는 〈밥블레스유〉가 좋다.
옥: 아이돌의 노래와 무대가 어느 포인트에서 좋은 것인지를 〈프듀〉 보면서 알았다.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연습 과정을 보여주니까 이 무대가 왜 좋은지 알게 됐다. 나는 업무상 배우를 예능에 내보내는 입장인데, 이 책이 저자의 입장에서 각 예능에 대해 말해주니 TV 가이드 같아서 좋았다.
은: 〈인간의 조건〉,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생각난다. 이 프로그램들이 가진 도전의 포맷이 좋았다. 〈무도〉를 좋아했던 이유도 하나의 미션을 두고 출연자들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였다. 그리고 요즘 유튜브에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옛날 시트콤이 편집돼 올라오는데, 여성 차별 등 구시대적 요소가 거슬리더라.
경: 잘 안 알려진 프로그램 중 인상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행복한수다 좋은친구〉다. 양희은, 박미선, 송은이가 함께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추억 미화된 면도 있겠지만 세 출연자가 수다 떠는 것만 봐도 재미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원래 예능과 코미디를 사랑한다. 소위 ‘티키타카’가 맞는, 잘 짜인 대화가 주는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시트콤이나 예능은 같은 편을 여러 번 돌려보기도 한다. 불편한 지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봤던 〈라디오스타〉는 내 길티 플레저였다. (〈프듀〉 등도 마찬가지.) 그런데 저자가 이 책 내내 지적한 갖가지 불편한 구석을 본격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예능을 잘 못 보게 됐다. 코미디에서는 메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장동민 등 한국 남성 예능인들은 그게 안 되는 것 같다. 연기자와 캐릭터를 분리하기 어려우니 코미디를 코미디로 볼 수가 없는 느낌.
정: 앞에서 ‘대화 주고받는’ 것에 대해 언급해서 신현준-정준호가 생각났다. 나는 이들이 시상식에서 MC를 보면서 시상식이 보기 싫어졌다. 좋아하는 예능인 중 한 명은 유병재다. 그가 유튜브에서 하는 〈창조의 밤〉을 좋아한다. 지리산에서 내려와 요즘 노래를 모른다고 하면서, 누구나 알 법한 노래를 절묘하게 바꿔 들려주는 콘셉트다. 끝까지 열렬하게 시청했던 프로그램은 〈무릎팍도사〉. 한 사람을 속속들이 파헤친다는 점이 좋았고, 나는 역시 인터뷰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이: 〈LA 아리랑〉과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좋아했다. 두 작품 모두 뻔한 클리셰가 없었다. 가령 〈LA 아리랑〉에서는 여운계의 캐릭터가 미디어에서 흔히 보던 할머니 캐릭터가 아니라 원하는 걸 당당히 표현하는 인물이라서 좋았다. 그리고 박정수가 암에 걸리며 끝나는 결말도 신선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는 당대 소위 ‘골드미스’라고 불렸던 이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가장 열렬하게 본 것은 역시 〈무도〉. 공익적인 소재도 뻔하지 않고 담백하게 다뤄 좋았다.
정: 〈무도〉에서 처음 본, 같은 장면을 여러 앵글로 반복해 보여주는 편집을 싫어한다. 예전에 일본 예능에서 보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국 예능에서도 하고 있더라. 이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편집이 중요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편집, 자막이 8할인 것 같다.
영: 예능을 찾아보는 타입은 아니지만,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화면도 좋고 편하게 볼 수 있다. 동참해서 웃고 싶을 땐 나영석 예능을 본다. 〈꽃보다 청춘〉이 가장 재미있었고, 〈꽃보다 할배〉는 할아버지들을 ‘우쭈쭈’ 해주는 것 때문에 싫었다. 〈런닝맨〉처럼 누군가를 속이는 장면이 나오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러 다니는 것처럼(〈상상원정대〉) 가학적 면이 있는 예능도 싫어한다.
광: 〈청춘불패〉, 〈가시나들〉이 인상에 남았다. 이질적인 조합에서 나오는 의외의 케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측 안 되는 유머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좋았다.
정: 제일 좋아했던 건 〈TV인생극장〉이었다. 극 자체가 재미있고, 그 시절의 이휘재를 좋아했다.
달: 예전에는 드라마 보듯이 모든 회차를 다 챙겨봤는데, 요즘에는 그냥 틀면 나오는 걸 본다. 머리를 말리면서 보기 때문에 자막이 있는 게 좋다. 추리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니어스〉, 〈크라임씬〉도 재미있게 봤다.
이: 예능에 일반인 나오는 걸 잘 못 보는데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보게 된다. 프로그램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다.
그 외에 ‘먹방’ 예능, 〈구해줘 홈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에 대한 의견이 오갔고, 책에 언급되지 않은 외국인 예능에 대해 “최초의 외국인 예능은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 “〈미수다〉는 그냥 외국인이 나오는 〈세바퀴〉였다” “〈비정상회담〉의 출연자가 거의 남성이었던 점이 재수 없었다. 여성 출연자가 주였던 〈미수다〉와 톤이 완전히 다르니, 다루는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등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성 패널이 출연했던 시사 예능으로 〈뜨거운 사이다〉가 언급됐습니다.
2019년 11월 2일(토)
책: 〈아무튼, 예능〉, 복길
발제자: 장하경
참석자: 9명
저자 복길(@whereisgunny)은 여전히 본인이 시청 중인 프로그램을 캡처하고 코멘트를 더해 트위터로 중계를 합니다. 트위터 특성상 흘러간 타래를 온전히 다시 보기는 어려우나, 2015년에 ‘제50회 대종상 영화제(2013)’를 다시 보며 중계한 타래가 모멘트로 남아 있어 url을 공유합니다. 웃음을 터뜨리기 쉬우니 혼자 있을 때 보는 것을 권장합니다.
https://twitter.com/i/moments/923069178562482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