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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Jul 04. 2024

가장 보통의 사랑

김기태 | 전조등

 꽤 오래 전부터, 나는 이런 소설과의 만남을 고대해왔다. 가장 평범한 사랑에 대한 예찬이자 가장 보통의 삶을 위한 소설과의 만남을. 김기태 작가의 단편소설 [전조등]이야 말로 내가 찾아 헤매던 소설이었다.

 해당 단편이 포함된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이긴 하나, 나는 김기태라는 작가를 2022년 신춘문예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대회 기록도, 수상 실적도 시원찮은 고등학생 역도 선수 송희의 이야기를 담은 [무겁고 높은]이라는 작품은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꾸밈없는 문체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나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 이 작품을 사람이 붐비던 퇴근길 지하철에서 처음 접했다. 이 작품 역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포함되어 있기에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담긴 김기태 소설의 특징은 바로 “평범함“이다. 그간 몇 년간 다양한 장르의 소설들이 한국 문학계에 등장하였다. 이를 테면 성소수자, 젠더, 내면 의식, 판타지, 역사 소설 등, 꽤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 소설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뤄냈다.

 

 그러나 정작 ‘문학은 사회를 비추는 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문학 장르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학에서 평범함에 대한 논의가 줄어든 것은 분명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김기태의 소설은 내게 있어 큰 발견이었다. 그 중에서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세번째로 수록된 단편 [전조등]은 그간 내가 찾고있던 소설 중 하나였다.



 소설은 ‘그’라는 한 남자의 삶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막내로 태어나 성실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름있는 대학교의 통계학과에 진학한다. 그곳에서도 성실하게 학업을 이행하는 동시에 연극부 활동도 함께하며 대학 생활을 보낸다.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하지만 ‘어떤 이십대적인 이유로 싸우다가’ 헤어지게 된다. 이후 이름있는 기업에 취업한 그는 착실하게 일을 하며 회사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간다. 결혼 적령기가 됐을 무렵에는 한 여자를 소개 받고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직장인 연극단에서 연기를 하는 그녀의 공연도 보러가고,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려가던 중 그는 마침내 결심을 한다. 반지를 차에 숨기고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청혼을 계획한다.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계획은 조금 틀어지지만 우여곡절 끝에 청혼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몇년 뒤, 한 번의 유산 이후 딸이 생기고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 조촐하게 이사를 축하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이 난다.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에서는 그리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이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도,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리지도, 소중한 누군가 죽지도 않는다. 소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평범하게 사랑하여 평범한 가정을 일구어낸 한 인물에게 집중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 당신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지난 몇년 간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평범함을 잊어왔다. 평범함의 기준을 잊어왔다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뛰어난 사람들의 삶을 보며 그것이 평범한 것이라고 착각해왔다. 그렇게 사는 게 성공한 것이라고, 다들 이정도는 산다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평범함‘은 잊은 채 거짓된 성공을 쫓게 되었다. 주변에 널려있는 행복은 보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기 바빴다.


 소설은 그런 우리에게 ‘진짜 평범함’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워준다.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주고 우리가 그들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가장 보통의 사랑. 가장 보통의 행복. 가장 보통의 삶. 소설은 우리가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가족, 사랑, 친구, 직장, 학교 등, 우리가 살아가는 위치에서 울고웃으며 때로는 사랑에 빠지고 또 때로는 그들과 ‘어떤 이름 모를 이유’로 싸우고 헤어지고.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울고웃고 하는 것.


 이건 분명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소설 [전조등]은 너무 많은 ‘가장 보통의 것들’을 놓치고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보통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보통의 것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방법을 알기 위한 소설로서, 나는 김기태 작가의 [전조등]을 추천하고 싶다.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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