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소연 [그 개와 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어쩐지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이끌어나갈 수 있는 우리 삶과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되고는 한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가 증명해왔듯이, 그러한 혁명 서사는 늘 평범한 개인의 집합이었다.
그리고 예소연 작가의 소설 [그 개와 혁명]은 개인의 거대한 집합이던 혁명 서사를 한 가족의 서사로 전환하는 동시에 그 가족 서사를 또다시 우리 사회를 향한 작은 혁명으로 명명했다는 점에서 문학과 혁명의 관계를 재정의 하였다.
1975년 발표된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 듯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 역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혁명 서사가 될 것이다.
그 혁명은 웅장하지도 않고 거룩하지도 않으며 수많은 개인의 거대한 집합 또한 아니다. 그것은 그저 훼방을 놓는 일이다. 즉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기 위한 혁명이 아닌 계란으로 바위를 더럽히기 위한 혁명이다.
그것이 바로 [그 개와 혁명]이 담고있는 우리 세대의 혁명이다.
소설은 부친인 태수씨의 딸이자 페미니스트인 수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암 투병 중이던 태수씨가 통 잠을 못 잤다는 얘기, 태수씨가 새벽에 깰 때마다 병원 복도를 함께 돌았던 일, 태수씨 장례식 상주를 두고 다툰 일 등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장례식에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태수씨의 대학 동기, 성식이 형이었다. 그들은 모 대학 사학과 85학번으로 민주85라고 불렸다.
운동권이었던 그들은 한때 친했지만 성식이형은 NL, 태수씨는 PD였던 탓에 멀어졌다고 했다.
수민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오랫동안 복역한 성식이 형에게 집에 있는 태수씨의 개, 유자를 데려와달라는 알 수 없는 부탁을 하고 헤어진다.
그 뒤로 수민은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차례로 맞이하며 중간중간 투병 중이던 태수씨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수민은 태수씨가 그들에게 해야할 말을 태수씨의 말투를 따라하며 전한다.
수민은 태수씨의 생전에 그를 ”훼방을 놓고야 마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렸다. 그리고 수민은 그런 태수씨, 여동생 수진과 함께 태수씨의 장례식에서 혁명을 도모한다.
얼마 뒤 수민의 부탁을 받은 성식이 형이 유자를 데려와 장례식장에 풀어놓으며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에 엄마인 공여사는 수민과 수진에게 역정을 내지만 태수씨의 말투를 따라하며 “공여사, 자중하시오. 우리의 적은 제도잖아”라고 하는 수민의 말에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는다.
수민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는 이유를 “태수씨의 마지막 지령”이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며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 개와 혁명]은 앞서 말했듯 혁명 서사인 동시에 가족 서사이다. 수민은 태수씨가 몸 담았던 운동권, 그리고 NL과 PD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태수씨는 수민이 참여하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요즘 여자들이라는 표현을 쓰고는 했다.
하지만 이런 서로에 대한 무지는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점차 해소되고 이 소설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수민의 부탁으로 집에서 데려온 태수씨를 따르던 반려견 유자가 장례식장에 난입해 현장을 그야말로 개판으로 만드는 장면은 이 소설이 사실상 이 장면을 위해 쓰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첫문장에서 말한 혁명이라는 단어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80년대 학생 운동의 전성기가 지나가고 그 이후로는 혁명이라 할 만큼 사회의 대변혁을 추구하는 거대한 운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개와 혁명]은 이 혁명이라는 단어를 전체 사회의 움직임이 아닌 가족 서사에 등장시키는데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혁명이라는 단어 이외에 이 난장판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태수씨, 공여사, 성식이 형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세대가 각각 죽음, 허탈하게 주저앉고, 장례식장에서 끌려나가며 퇴장하고 그 자리를 주인공 수민과 그녀의 여동생 수진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새로운 변혁을 꿈 꾸는 신세대로 대체되는 마지막 장면은 그 자체로 시대 정신의 전환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와중에도 혁명의 매개인 유자를 데려온 이가 구세대인 성식이 형이라는 점은 이전 세대의 진정성이 희미하게나마 다음 세대로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 개와 혁명]은 불합리한 사회에 “훼방을 놓는 일”을 혁명이라고 정의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어떤 혁명을 도모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일에 훼방을 놓을 것인가?
혁명과 가족, 그리고 이해의 서사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