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부엌으로 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습관적으로 유튜브에 들어갔다 황급히 뒤로가기를 누르고는 본래 목적지였던 워드에 다다른다. 무정하게 깜빡이는 커서가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당신은 잠시 동안 커서를 응시한다. 그리고 당신은 문득 깨닫는다. 지금 쓰고 싶은 글이 없음을.
당신은 이내 고민에 빠진다.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기분 좋게 늦잠을 잔 일요일 오후였기에 당신은 마땅한 주제를 찾지 못한다.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당신은 눈 앞에 놓인 책을 뒤적 거린다. 그러나 차가운 활자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번에는 휴대폰을 들어 메모장으로 가본다. 하지만 과거의 당신은 현재의 당신에게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당신은 다시 커서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는 무언가 결심한듯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타작거리는 소리가 몇번 반복 되더니 같은 키를 여러번 누르는 소리가 리듬감 있게 방 안에 울려퍼진다. 방에 걸려있는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큰 시계가 당신이 방금 전 했던 일들의 무의미함을 상키 시킨다.
당신은 잠시 동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 노트북을 덮는다. 그리고 1시간 뒤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당신은 쓰고 싶다.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쓸 수만 있으면 된다. 노트북 앞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몇 시간이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다.
처음 글을 썼던 건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그날은 방학 무렵이었고 기말고사가 끝난 뒤 집에 있던 하루키의 소설 1Q84를 읽은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전날 밤 잠이 들지 않아 유튜브에서 노인과 바다의 오디오북도 들은 터였다.
평소처럼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멍하니 있다 유튜브에서 노래 하나를 들었다. 어느 일본 가수의 “별들의 장례행렬”이라는 노래였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는데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전조증상 없이.
나는 그렇게 내 인생 첫글을 썼다. 제목은 모티프가 된 곡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와 썼다. 내용이랄 것도 없이 그저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할아버지와 손녀가 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이자 끝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글이 만들어지고 나는 그걸 쭉 따라적는 듯한 느낌이 손끝에서 떠나가지를 않았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해서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은 소설은 거의 쓰지 않지만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때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종종 있다.
글은 어디선가로부터 오는 영감이 대신 써주고 나는 그것을 받아적기만 하는,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글을 쓰는 행위를 왜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러나 당연히 글이 써지지 않는 때도 많이 있다. 그리고 종종 글 쓰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오고는 한다. 아마 글 서두에 나왔던 인물과 같은 상황일 것이다.
슬럼프에 어떻게 대처하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글쟁이들의 답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냥 안 쓰는 것. 그리고 써질 때까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리는 것. 그게 아마 많은 글쓰는 이들이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글을 쓰는 이유 역시도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글을 쓸 때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쾌감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글을 쓴다. 오늘도 노트북이나 컴퓨터, 태블릿 앞에 앉아 멍하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무엇이든 시작할 때의 마음을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어떤 것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처음 접했을 때의 떨림과 설렘 같은 감정들이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글을 쓰는 모든 분들이 처음의 감정을 가지고 꾸준히 쓰는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