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서 오래 전 순수함과 마주쳤다

잊고 있던 야구와 순수함

by 남이월

지난주 금요일 저녁 무렵이었다.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학교 앞을 지나고 있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야구 배트와 공을 든 초등학생 무리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무리라고 해봤자 4명 정도였으나 요즘도 여기서 야구하는 아이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이들이 쓴 모자가 익숙했다. 강렬한 빨간색 바탕에 쓰여있는 우리 동네의 이니셜. 내가 6년 전 다녔던 리틀 야구단의 모자였다. 거기에 자세히 보니 당시에 선수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던 야구 가방도 메고 있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OO리틀 다니냐는 질문에 아이 하나가 그렇다고 답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나도 6년 전쯤 그곳에 다녔다고 얘기하자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누구를 아느냐, 누구랑 친했느냐 같은 질문들을 우수수 쏟아냈다.


당연히 나는 6년 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리틀 야구단도 떠났기에 그 아이들이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한참의 질문이 끝난 후 이번에는 내가 감독님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은 잘 계신다는 대답과 함께 다음 주에 야구대회에 나간다며 들뜬 목소리로 얘기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잊고 있던 옛 추억 하나를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할 줄이야. 아이들은 야구는 다 했는지 근처 문구점을 향하고 있었다. 의심스럽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레 쫓아가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형이 간식 사줄까?”


아이들은 아까보다 더 큰 함성을 질렀다. 먹고 싶은 거 하나씩 고르라는 말에 아이들은 허겁지겁 고르면서도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결제를 끝낸 후 어딘지 쑥스러워져서 다음 주 경기 잘하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도망치듯 문구점을 뛰쳐나왔다. 그렇게 문구점을 빠져나와 집을 가는 내내 가슴이 떨렸다. 오래된 추억을 마주한 반가움일까? 나는 집으로 향하는 동안 그 질문의 답을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추억을 마주친 반가움이 아닌 나의 추억을 지켜주고 있는 그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그때의 나에게 야구는 인생의 일부가 아닌 사실상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매주 주말마다 아침잠을 포기하면서까지 갔던 그 작고 허름한 구장이 나에게는 꿈의 그라운드였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침 그 시기에 코로나19도 겹치면서 나는 다소 갑작스럽게 리틀야구와 이별해야 했다.


그 이후로 거의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이제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나의 추억이 담긴 그 구장을 지켜주고 있는 아이들이 나는 너무나도 고마웠던 것 같다.


비록 배트와 글러브를 잡은 지는 오래 됐지만 여전히 야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내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던 그 시절의 나, 그리고 함께 했던 형, 동생, 친구들의 순수했던 열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래서 그걸 떠올리게 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 “무엇”의 동기가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순수한 열정이라면 우리는 그걸 묵묵히 해나가는 이들에 대해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야구가 좋아서, 야구를 사랑해서, 야구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있는 아이들 아닌가. 그 순수하고 맑은 눈빛이 아직도 내 눈앞에서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듯하다.


처음의 마음이 한결같기를

시간 지나가도 언제나 변치 않길

좀 더 좀 더, 좀 더 좀 더

지금보다 강해지는 내가 되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노래 가사가 귓가에 아른 거렸다.



*송봉조 - 저녁 하늘의 종이비행기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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