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받지 않을 죽음은 없다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과 유가족들께, 그리고 인터넷의 2차 가해자들에게

by 남이월

어제는 이태원 참사 3주기였다. 이에 맞춰 진행된 추모식은 피해자들에게도, 유가족들에게도, 국가와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지난 2년과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참사 이후 처음으로 국가 주도를 통해 진행된 추모식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참사 발생 날짜에 맞춰 낮 10시 29분 서울 전역에 1분간 추모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많은 시민들이 그 뜻을 이해하고 추모에 동참하였으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진행되고 있었다.


1. 인스타 릴스와 댓글의 생각없는 생각

우리는 비교적 많은 이들이 사용하고 양지화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플랫폼의 여론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그곳의 여론 또한 현실의 대다수와 일치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스타그램의 릴스와 댓글을 본다면 그렇게 말하기가 민망해진다.

얼마 전 친구에게 릴스를 하나 공유 받아서 본 적이 있다. 릴스의 제목은 “진보와 보수 구별법”. 흔히 보이는 지식형 릴스의 형태를 하고 진보와 보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워 시청하였으나 남은 건 분노였다.

릴스의 주장은 처음부터 이해되지 않았다. 보수는 자연 그대로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진보는 그 섭리를 거스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국민의 삶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논리였지만 정작 나를 화나게 한 말은 예시로 이태원 참사를 들며 한 말이었다.

해당 릴스는 이태원 참사는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그 현장에 있던 개인의 불행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대부분의 2차 가해가 이 논리에 입각하여 행해진다. 개인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를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사건 직전 접수된 신고에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는 점, 많은 인파 운집이 예상 되었음에도 경찰 기동대를 배치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공권력의 안일함과 해이함으로 인해 발생한 명백한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었던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하는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해당 릴스에 대해 분노했던 부분은 또 있다. 릴스의 제작자가 유독 이태원 참사를 콕 찝어서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공권력이 충분한 대처를 하지 못해 많은 사상자를 냈던 참사는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다. 그중에는 특히 많은 국민들이 피해자들에 대해 공감하고 유가족들을 적극적으로 위로를 보냈던 세월호 참사도 있다.

릴스 제작자의 논리대로라면 세월호 참사 또한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는 참사가 일어나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통령이 파면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내가 분노했던 지점이 바로 릴스 제작자의 이러한 비겁함이다.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공권력의 부재와 미흡한 대처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에서는 두 사건이 아주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만약 릴스 제작자가 똑같은 논리를 들먹이며 예시로 세월호 참사를 들었다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세월호 참사를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해도 된다고 얘기했다면? 아마 댓글에서 가루가 되도록 갈렸을 것이다.

릴스 제작자는 이를 알고 사람들의 반발이 적고 인터넷 내에서 애도의 대상이 잘 되지 않는, 심지어는 조롱의 대상까지 되는 이태원 참사를 굳이 예시로 든 것이다. 댓글의 반응은? 당연히 이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조롱과 2차 가해로 가득했다.

이는 현재 인스타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 누구도 놀러가서 죽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놀러갔다가 죽은 건데 우리가 왜 애도하고 추모해야 햬?”이다.

사실 이 글을 저 말에 대한 반박을 위해 쓰여진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놀러갔다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즐겁게 놀러갔을 때, 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국가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왜 존재하겠는가?

그러나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는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애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모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이 나, 가족, 친구 등 주변인의 일이 될 수 있기에 국가가 국가의 의무를 다하도록 감시하고 국가가 그러지 못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 국가에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예의이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도리이다.

고상하고 이성적인척 하며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그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은 결국 또다른 비극과 참사를 낳을 뿐이다.


3. 애도하고, 추모하고, 기억합니다.

오늘 글의 마무리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추모와 위로로 대신하겠습니다.


어제는 이태원 참사 3주기였습니다. 비극적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로 여전히 고통 받고 계신 유가족 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비극,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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