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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7. 나에게도 시작이 있을까

단순 명쾌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요령껏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쉽게 가고

복잡해진다 싶으면 피해 갔다

고3 땐 경주서 온 교수님에게 '박물관에서 일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고 '그럼'이라는 구라에 넘어가 부모 허락 없이 원서 넣고 대충 대학을 갔고(박물관에서 일은 할 수 있었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인맥, 학업 등 총동원하면 그러니 거짓은 아니지만...) 그러니 수능 스트레스도 없었으며 직업학교에서 작성한 이력서와 자격증으로 대충 취업했으므로 취업 스트레스도 없었다.

대충이었기에 늘 후회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우울한 속을 달랬다. 왜냐면 정신승리 외엔 달리 할 게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며 첫 연애는 완전 대실패와 막장으로 막을 내리며 눈에 뵈는 게 점점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영부영 결혼했다.

독립을 반대하는, 집을 떠나면 배신이라 생각했던 엄마를 피해 2년여를 만나는 애인에게 졸라 결혼을 덜컥했고 지금은 6살 딸을 가진 배 나온 삼십 대가 되었다. 그러니 스드메가 뭔지 앞으로 우리 둘만의 신혼 이런 것 따윈 생각 않고 오직 엄마만 떠나자. 이 생각이었으니 결혼 준비 스트레스도 없었다.

엄마를 피해라는 설명은 말하자면 아-주 긴데 내 급여통장, 적금통장, 모든 것을 쥐고 대판 싸워 피까지 튀긴 현장을 아빠가 퇴근 후 와서 목격한 후에 '둘은 떨어져 살아야 한다'라는 결론이 났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허어,

그렇다 인생, 늘 요령껏 뜻대로 될 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술술 흘러가는지 알았고 그런데 아니었다. 그냥 대충 머리아프다 싶으면 피해간거다.

늘어난 뱃살만큼 늘어난 식욕만큼 늘어난 짜증만큼 절대 점점 쉽게 살아지지 않아 곧 당황했고 단순 명쾌함뒤엔 또 다른 선택과 고통과 저항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령도 그때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쉽게 쉽게 가고 싶은 본능은 수그러들지 않는지 '이번 달은 요구르트'라는 단순한 제목으로 지인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제목이 찰져(우리끼리만) 이거다! 하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신나서 몸을 흔들기까지 한 이 제목은 쉽게 마실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는 뭐랄까 매우 쿨하면서 명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이 제목이면 뭔가 글이 술술 나올 것 같지 않아? 책 한 권 나올 것 같지 않아?라는 느낌적인 느낌.

그렇다 쓰고 싶은 건 많지만 '무얼'써야 할지 몰랐던 나는 이제야 자질구레함을 쓰고 싶어 진 것이다.

대충 살았지만 대충 속에 소심함을 구겨 넣어 나를 방어하고 쉽게 가려고 하다 놓친 일련의 이야기들을 그럼에도 꼴에 취향은 있는 그렇게 마음먹은 일들을, 끝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실패하고 때론 눈물 나도록 감사했던 마음들을 풀어보려 한다.

17년도 이후 그러니까 삼십 대가 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심을 다해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인생 2회 차 '시작'이구나. 생각했던 그때부터 쭉쭉.

현재 내 인생 좌우명은 <인생 어차피 저항받는다.>이다. 그러니 되지도 않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보단 우선 시작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끝을 보자.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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