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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8. 그와 보리차


손등을 폭 덮은 니트를 입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차를 따르는데 갑자기 남편이 잡아주던 손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우리는 이제 결혼 7년 차를 막 지났으며 6살 딸아이를 키워내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부부로 좋게 말하면 영혼의 단짝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느닷없이 방귀 공격을 하고 밥을 먹을 땐 재잘거리다 밥풀도 서슴없이 튀길 때도 있는 아주 편안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편안하고 안심되는 사이가 불과 6년 전엔 “ 손이 왜 이리 차.., “ 하며 내손을 꼭 잡아주는 그런 남편이 존재했다니 옆에서 ‘나도 물’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보니 생소한 느낌에 이상하게 보던 말든 웃음이 나는 것이다.

지금은 화장실 휴지를 아무렇지 않게 부탁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물론 물로 씻고 나오라며 약을 올리는 사이지만 그때는 당연하게 잡고 싶을 때 잡힐 줄 알았던 손이 지금은 딸아이의 양손을 각각 잡고 길을 걷고 또 각자의 일을 해내느라 어느 날엔 이제는 손을 잡을까 하다가도 다른 일에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잡아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지 않지만 뜨거운 보리차를 후후 마시며 둘이서 서있으니 어느 날은 말없이 회사 앞에서 당연히 손을 잡고 퇴근하던 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 손을 꼭 잡고 하루를 보내던 날도 더듬더듬 기억이 나는데, 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손이 차다며 걱정하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실이 아직도 신기하다.

내 손등을 바라보다 남편의 손과 함께 시간을 쌓는 많은 날이 생각난다.

앞으로도 숱한 세월을 서로 보리차를 끓이고 나눠 마시며 오늘 저녁은 무얼 먹을지 휴가는 어디로 갈지, 보리차를 끓이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지. 늘 내 손이 차다는 걸 알고 싫은 소리 뱉으며 모르는 척 잡아주며 핀잔을 주겠지만 무탈한 오늘에 감사하며 손을 힘껏 잡겠지.

보리차를 끓이며 먼 미래의 우리를 상상해본다.

티격태격 해도 좋으니 그때도 내 옆에 있어야 할 책과 당신과 딸이 건강히 함께 하고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국내산 보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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