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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2. 심플하게 맥주

좋아하는 책은 매 년 읽는 타입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아 집어 든 건 도미니트의『심플하게 산다 』

좋아하는 파자마를 꺼내 입고 협탁에 맥주를 놓고 책을 펼쳐 오늘 밤을 보낼 준비를 한다.


 ' 그 행복감을 상상해 보자. ' 

사로잡은 문구를 연필로 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은 뒤 펜을 집어 들었다.

좋은 책의 기준은 그 순간 그 책을 읽고 쓰지 않으면 배길 수 없게 만드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나의 좋은 책의 기준으로 남아 다시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순위를 올려 나의 취향 목록을 작성하는데 한몫한다.

이 책의 감상은 나의 상상으로 채워지고 나는 이 책대로 살아가고 싶어 넘쳐나는 옷들과 쓰러질 듯 쌓인 책과 물건으로 둘러싸인 협탁을 둘러보게 된다. 조명을 받아 기포가 또르륵 오르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메모를 시작한다. 분명 나는 미니멀 라이프라 자부했는데..,


' 소식하고 운동하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물가로 소풍을 간다.

작고 아담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어보고 볕이 드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재밌는 책을 읽는다. '

타인의 읽고 쓰는 삶을 상상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볕이 뜨거운 낮에 수영복과 타월, 그리고 맥주와 읽을 책만 가지고 물가로 소풍을 가는 꼭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일인 양 상상하며 맥주로 목을 축이는 밤, 이 곳이 어느 한적한 오두막이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하면서.

생각의 힘을 믿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하는 이 감정적인 행동은 열에 열 번을 해내려 해도 현실 불가한 일도 많아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읽고 쓰기니까 이 행위는 언제 어디서든 해낼 수 있으며 곧 이루어질 거라 믿고

앞으로의 먼 미래를 그려보는 것으로 나의 상상의 허기를 달래 본다.

나의 꿈은 작고 아담한 책방을 하는 것이었고 시간이 흘러 아담하진 않지만 남편과 나의 손길이 담긴 책방을 열게 되었다. 그리고 늘 책방을 하는 날을 상상하며 남긴 나만의 낭만이 담긴 책방은 그렇게 기록으로 남아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수정 없이 그대로 가지고 온 글을 여기 남겨본다.)


그 책방의 구석엔 네모난 공간이 있는데 2인 좌석이 드문드문 배치되어있다.

그 좌석의 생김새는 푹신한 쿠션같이 생겼는데 그 속에 폭 몸을 구겨 넣고 편하게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그곳에서 대화는 실례다.

필요한 게 있으면 쪽지를 건넨다. 그러나 그 침묵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때로는 먼 길을 와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어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다.

오늘 내가 앉은 그 쿠션 같은 의자는 오늘의 친구가 되고 은은하게 내리는 조명은 글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책이 가득한 벽면의 여유에선 주인의 취향인 영상이 흘러나온다.

참고로 주인은 고리타분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라, 유치하거나 옛날이라는 단어에 맞는 어린 시절의 만화, 가족애를 다룬 영화 아픔이 없는 해피엔딩의 모든 것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그곳엔 모두가 여행 에세이를 풀어낼 수 있으며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소설과 이야기들이 즐비하며 눈물은 없으며 생각만이 남는다.

맥주를 마셔도 된다. 책과 어울리지 않는 액체는 없다.

쓰다 보니 작고 아담 한 게 아닌 것 같은 아직은 이름 모를 책방 앞에서 문을 여는 상상을 한다.

나는 생각의 힘을 믿고 쓰기의 힘을 더더욱 믿는다.

그것은 나의 꿈이 마음이 덧대어져 번들거리게 한다던가 그리고 하루를 소중히 만드는 힘을 준다.

나는 심플하게 살고 싶다.


비워진 맥주잔을 치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새로운 메모를 맨 앞장에 채운다.

기록의 힘이었는지 나의 책방은 작고 아담한 곳이 아닌 좀 큰 장소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이름의 책방을 열고 닫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삶의 루틴이 깨지지 않고 이어져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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