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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4. 일과 일상의 경계

노지양 작가의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를 읽다 번역가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타인의 직업을 염탐하는 일은 꽤 재밌는 일이다.

특히 자신이 꿈꿔왔거나 이 일이 라면 지금보다 나를 더 자존감 있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 찾아오는 열등감에 빠져있을 땐 더욱이.

그녀는 시야가 좁아지고 내 세계가 작아지는 것이 두려운 엄마이지 80여 권의 책을 번역한 중견 번역가이다.

그리고 지금은 번역 누구가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책, 작가로서의 삶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당연한 거라 여겼다. 좋아하는 일이고 꿈꾸었던 일이기에 때론 우와, 할 정도로 과감하게 자신을 어필하고 배우고 쓰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부러워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한 줄도 쓰지 않는 사람이고


글로서 먹고사는 삶을 꿈꾸는 나는 아무리 그녀가 자신은 아직 멀었고 재능도 없고 어떤 일이든 쉽게 질린다고 했지만 누구보다 자기 자리를 사랑하고 일과 육아를 두 가지 다 완벽하게 잡은 것 같아 감탄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이 비치되어 있는 서점들, 그리고 번역으로서의 삶이 아닌 자신의 문장을 가지고 사는 작가로서의 삶.


원서를 옆에 두고 커피 한 잔과 노트북을 열고 빠르게 작업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좋은 문장을 만나 아름답게 가꾸고 교정하고 마감하는 일을 하며 오늘 분량의 일을 하고 작업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엔 저녁 장을 봐서 돌아가는 길(작가는 이런 변함없는 같은 일상에 대해 불안감을 표했지만)

단골 카페에 앉아 노트북과 책 한 권을 가지고 일을 하고 여행지에서도 낭만과 일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부러움.

그러나 모든 일에 저마다의 고충과 단점들이 쏟아지는 법!

흔히 새로운 작업환경으로 급부상한 디지털 노마드족엔 누군가는 번역가도 포함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과 일을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우아한 작업일 거라 착각했던 나에게 그녀는 사실로서 그 낭만을 과감히 부숴준다.

노트북과 독서대 그리고 두꺼운 원서, 짐은 많고 필요한 것도 많고 특히 인터넷이 느리면 그건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준다는 것, 또 여행을 와서 까지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물론 엄청한 기기의 등장으로 간편하고 편의성 있게 바뀔지도 모르고 실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디지털 유목민들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현재만을 말하자면 그렇다.


'번역은 영감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일로 기본 적으로는 남의 글을 되도록 정확히 전달하는 작업이다.'

어쨌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정확성을 전달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벗어날 수 없는 일로 일이 끝날 때 까진 죽을상을 해도 결국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감하고 무탈한 과정을 거쳐 책이 나오면 좋으련만, 어느 때는 편집자에게 혹평을 듣기도 책의 후기엔 번역이 별로라는 독자의 쓴 말도 읽으면서 자신이 '쓴'책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사랑이 들어간 자식 같은 책이 세상에 나오면 그렇게 뿌듯하고 감동적이라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하나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지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작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 어디쯤 한 자리 차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흔한 생각을 하면서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어찌 됐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래, 뭐라도 쓰자' 하며 글을 마친다.


엄마와 책방지기의 그 일과 일상의 경계에서 이 책이 오랫동안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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