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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3. 썩은 생선과 건더기가 없는 양배추 수프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수용소의 하루』를 읽고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던 건 이반이 먹던 썩은 생선과 야채 건더기가 하나도 없는 묽은 수프였다. 정말 말이 좋아 스프라고 부르지 그냥 우린 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생선은 이미 문드러질 때로 문드러져 살은 하나도 없고 시들한 야채도 운이 좋으면 한 덩이를 건질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식사라 부르기도 뭣한 그 묘사를 읽고 오히려 식욕이 들던 나까지.


1951년 1월 1일 주인공 슈 호프가 기상 후 강제 노동 후 취침시간이 될 때까지 하루 동안 일어나는 수용소의 실태와 과거와 현재 수용소의 현실이 이반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로 제일 놀라운 것은 한참을 읽다 보면 제목 그대로 수용소의 하루지만 이 많은 참단 한 일들이 고작 하루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잠이 많은 나로서는 아침잠을 통제하는 작품에 곤욕을 느끼게 되는데 이른 아침에 강제 기상을 하고 거기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까지 겪는 이 책에서 기댈 건 간간히 쬐는 그 불길이었다. 나조차 추워 전기장판에 몸을 맡기고 읽던 현실에서도 느껴지던 추위.

수용소 밖의 가족의 소식, 세상일에는 무감해지고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이반 데니소비치는 그럼에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고난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도 않고 꿋꿋이 현실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산다는 것. 그 어려움을 이반은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같은 수감자를 배려하고(그것이 생존과 직결되는 계산된 행동일지라도) 비록 강제노동이지만 부여된 작업량에 몰입하며 오늘도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점심시간이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다시 한번 더 말하지만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건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불 앞에 말리는 펠트 장화, 건더기 없는 양배추 수프다. 이반은 불평을 하면서도 굶는 건 바보 같은 짓이기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식사를 한다. 정말로 식사를 한다.

박탈당한 한 인간의 삶에서도 수프 안의 썩은 생선살이 다 녹아 그저 죽죽 한 수프도 장화에서 꺼낸 숟가락으로 음미하고 오랫동안 씹으며 찬찬히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식사를 마친다. 그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 하루는 처벌도 없었고 구타도 없었고 몸이 아프지 않았고 수프엔 어느 정도 살이 붙은 생선이 있었고 주머니에는 먹지 않고 남겨둔 딱딱한 빵 한 조각이 있다는 것과 저녁 점호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하며 내일을 위해 추위 속에서도 잠이 든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도, 내일이 없는 이 수용소의 지옥 같은 생활에도 그는 조그만 것에도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하며 영원히 반복되는 이 참혹한 추위와 노동의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가 제일 두려워하는 일이 무엇일까. 그건 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나’라는 존재가 하등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할 때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현실에 좌절해 나를 잃고 희망을 잃는 것. 슈 호프처럼 식사를 하는 것. 어느 대목보다 슈 호프의 식사 장면에서 그 강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의 숭고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양배추가 들어간 수프를 볼 때마다 나는 인간의 강인함과 숭고함을 동시에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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