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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 Feb 12. 2019

06. 명절 나물과 튀김 냄새

분명 명절. 만나지 못했던 가족 친척과의 만남 대한민국의 민족 대이동이란 말 까지 나오는 설인데 며칠 전부터 슬슬 남녀 갈등, 제사 갈등, 이혼율이 최고치로 치솟는 명절 후 명절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부터 친척들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말,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나 또한 가족들이 만나 밥 한 끼 하고 만나서 덕담에 근황까지 나누며 정을 느끼는 좋은 날이지만 결국 하루 종일 장을 보고 음식 장만, 그리고 식사 준비, 설거지옥과 집 정리, 멀리서 온 자식들 좋아하는 음식 배부르게 먹일 생각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친정과 시댁을 보며 '조상님들이 이 정성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가 있나 싶다'

물론 명절이 되면 별 일없는 나도 일단 신경을 쓰게 되고 특히 당일 제사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하니 명절은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거기다 꼰대들의 지적질과 충고충들의 오지랖 테러를 어릴 때부터 당해보았기에 벌써부터 친척들을 보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일단 현명하고 좋으신 시댁을 둔 나로선 몸이 얼마나 고단하고 명절증후군이 얼마나 무섭고 친정 못 가는 설움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살아있는'사람들끼리 이해하고 배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콩나물을 삶고 시금치를 대치고 무를 채 썰고 두부를 댕강댕강 썰어 명태 대가리로 육수 낸 탕국을 끓이고 기름 냄새에 부엌과 옷까지 절어버릴 정도로 전을 붙이며 간소하게 준비해도 그 많은 일과 노동의 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게 아님을 그러니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며 다양한 가정사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는 이상 그리고 명절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그저 휴일처럼 바꿔버리지 않는 이상 '억지로'하는 느낌에서 각자의 가정사에 맞게 모두에게 맞는 가족행사 같은 의미로 모두가 편할 수는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참견하고 충고를 애정이라 둔갑시켜 자기는 덕담이라 생각하고 던지는 그런 그지 같은 안부도 없는 행사.


너네 집은 네가 우리 집은 내가 각자 다녀오자 라는 극단적인 댓글들을 보는데 과연 아이들을 데리고 '넌 이번에 어디서 지낼 거야?' 하며 각자의 집으로 가는 것도 서로 마음이 편할까 싶고 내가 너무 물정을 모르는 것 같아 쉽게 말도 못 하겠다

집으로 돌아와 잔뜩 싸온 나물과 튀김으로 밥을 차리고 넘치는 빨래를 널고 수고했다며 어깨를 주물러주고 딸을 시켜 '엄마 오늘 수고 많았어요'라는 말도 듣게 해 주고 별 고생 없이 시댁서 돌아온 나에게 늘 수고 많았다는 남편을 보며 은근 투정 부려볼 만 한데?라고 생각하는 스스로를 보며 결국은 내 옆, 남편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는 '당신, 수고했어' 이 말을 꼭 해주라는 기사에 큰 긍정을 하게 된다.

(물론 우리 남편은 로맨티시스트도 아니고 스윗 가이도 아니다)


참기름과 깨로 고소함을 더한 플러스 어머님의 손맛이 들어간 나물과 튀김 그리고 입고 간 스웻셔츠에서 풍겨 나오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어느 날 모든

이들의 꿈에 조상님이 나타나 '제사상은 됐다. 너네만 즐거우면 된다'라는 상상을 작게 해 본다 하하

도대체 명절은 누굴 위한 걸까? 노동은 빠지고 대한민국 공식 휴가로 모두가 맘 편히 알아서 쉬는 걸로 한다 치더라도 단점은 있을 수밖에 없겠지? 여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니까


제사상에 올릴 두부를 뒤집다 두부가 뭉게지고 간도 맞출 줄 몰라 허둥지둥, 채는 너무 얇고 탕에 들어갈 무는 작아서 숭덩숭덩 다시 크게 썰어야 했고 튀김은 덜 익을까 전전긍긍

음식준비 앞에서는 자꾸만 작아지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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