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철학동화
나이가 들고 <어린왕자>를 다시 읽게 됐다. 모든 문장이 새롭게 그리고 깊게 다가왔다. 어린 내가 <어린왕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어린왕자"의 말들을 이해하기에 나는 더더욱 너무 어렸다. 생택쥐베리가 왜 <어린왕자>를 어른인 그의 친구에게 선물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어른들을 위한 철학을 아름다운 동화로 풀어낸 <어린왕자>는 내게도 선물이었다.
세상 가장 어려운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나이 들면 들수록 사람 마음을 얻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실감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조금이라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무척 냉정하다.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도, 그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도 않는다. 어차피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저 사람과는 잘 맞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내게 머물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을 주기는 꺼려하면서도 누군가의 마음이나 관심, 애정은 받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태도가 누군가의 마음이 내게 머무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하기 전에 우선 내 마음을 주려고 노력해보자.
진정한 친구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다."
사람 마음을 얻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데,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사람이 있음은 기적과 같다. 내게 문을 열어준 그 사람. "내 친구"는 기적과도 같은 존재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내게 기적을 보여준 이들을 말이다. 나를 위해 마음의 문을 열어준 내 친구들을 위해 내 마음의 문도 활짝 열어두어야겠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음에 감사해야겠다.
길들인다는 것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나를 길들여줘. 가령 오후 4시네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러나 만일,
네가 무턱대고 아무 때나 찾아오면
난 언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지모를 거야..."
길들인다는 것은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그와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그 기다림의 순간이 행복과 설렘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기다림을 걱정과 불안이 아니라 행복과 설렘으로 채워주는 존재, 그 존재가 친구다.
나는 며칠 후에 함께할 내 친구와의 벚꽃구경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카메라를 들고 갈지, 사진은 얼마나 찍을지, 그리고 어떤 추억을 만들지를 생각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친구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설레는 이 마음에서 내 친구가 나를 길들였음을 그리고 우리가 둘도 없는 친구임을 확신한다. 우린 멋진 추억을 함께 만들어왔고 그 추억들을 회상하며 또 다음 만남을 약속한다. 친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 행복하고 설레는 것은 아마 내 친구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겠지..
소중한 것에 대한 책임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내가 나의 장미꽃을 위해 소비한 시간이라..."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지어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난 나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책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너무 거창하다. "어른이 되면 네 행동에 책임져야 돼"라는 말을 수십 번도 더 들으며 자랐다. 일종의 세뇌처럼 우린 "책임"을 불가피한 의무처럼 여긴다. 다시 말하면 어른들에게 있어 책임이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때론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책임져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사람에게 혹은 친구에게 져야 할 책임도 종종 잊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관계에 있어서의 책임진다"는것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길들인, 즉 나와 친구가 된 사람들에 대해 책임지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친구가 되기 위해 내가 소비한 시간과 누군가의 시간이 만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 시간 안에 추억을 담아왔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시간을 함께함으로써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고 많은 것을 나눴다. 그런 친구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배려하는 것과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친해졌다고 해서 친구가 됐다고 해서 나를 막대핟다며 그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장난을 치거나 말을 편하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친구를 막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나 생각 혹은 친구니까 털어놓은 비밀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 친구를 막 대하는 사람이며 친구에 대한 책임을 져버린 사람이다. 더 소중할수록 배려하고 예의를 지켜 친구를 대해야 한다. 친구를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나는 그것이 친구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라 생각한다.
사랑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꽃을 말이 아닌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했어..
내게 향기를 전해주고 즐거움을 주었는데, 그 꽃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어..
그 허영심 뒤에 가려진 따뜻한 마음을 보았어야 했는데..
그때 난 꽃을 제대로 사랑하기에는 아직 어렸던 거야"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이별을 겪으면서 그의 모난 부분을 탓하고 미워했다. 이별 후 한동안은 우리의 이별이 오롯이 그가 잘못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나를 소홀히 여겼으니 내가 변한 거라고 믿었고, 원인을 그가 제공했기 때문에 우리가 헤어졌다고 믿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잘못해서 우리가 헤어졌다고 여겼겠지.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그도 나도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제대로 사랑하기에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그는 그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내 방식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랑의 방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렸다. 그를 떠나지 말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우린 서로 다른 길을 너무 많이 왔으니까. 다만 겉모습 뒤에 가려진 그 마음을 많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작은 선물에 담긴 의미를 좀 더 크게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땐 사소해 보였던 것들도 지나고 보니 거기 담긴 진심이 보였다. 서로의 숨겨진 마음을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내가 그러하듯 그도 우리의 지난 순간들을 미움과 원망이 아니라 많이 서툴렀고 어렸던 젊음의 한 시절로 추억해주었으면 한다.
기다림
"나는 해 지는 풍경이 좋아. 우리 해지는 구경하러 가자.."
"그렇지만 기다려야 해."
"뭘 기다려?"
"해가 지길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선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것은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는 다르다. 이 기다림은 인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가령 성공을 보고 싶다 할 지라도 당장 성공을 할 수는 없다. 성공을 보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캄캄한 밤을 지나고 해가 내리쬐는 낮도 지나야 드디어 석양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꿈도 그러하다. 오늘 꿈을 정한다고 내일 당장 꿈을 이룰 수는 없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 인내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우리가 언제 꿈을 볼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노력조차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 기다림은 무척이나 길고 지루할 것이다. 게다가 그 기다림의 시간이 언제 끝이 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신없이 노력하다 보면 기다리는지도 모르게 꿈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루를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듯이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찾을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도, 감사도, 인내도, 배려도 모두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누군가의 겉모습과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보려고 노력하자. 우리 모두는 가슴 저 밑에는 우물 하나씩을 갖고 있고, 그 우물에는 분명 오아시스보다 더 달콤한 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별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가시고 나면(슬픔은 가시는 거니까)
나로 인해 잃은 슬픔은 숨은 사람이 찾는 거야
넌 언제까지나 내 친구로 있을 것이고
나와 함께 웃고 싶어질 거야 "
이별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사랑하던 연인과의 이별이든 누군가의 죽음이든 완전한 끝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나 시간을 함께하고 가족으로, 친구로 또는 연인으로 맺은 인연이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이별이란 그 인연을 가슴에 묻는 것이라 하고 싶다. 함께한 추억이 있고 내 기억 속에 그 사람이 남아있는 한, 인연이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니다. 멈춰 선 것일 뿐이다.
삭막하고 팍팍한 사막 같은 인생에서 "어린왕자"와의 만남은 오아시스처럼 마음을 적셨다. 그는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나를 길들였으니,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책장을 덮으며 우리는 잠시 이별했지만 그는 여전히 내 친구다. 아마도 이번에 내가 만났던 내 친구는 10년 후의 그와는 또 다르겠지만 언젠가 분명 다시 만다게 될 것이다.
혹시 마음이 메마른 사막 위를 방황하고 있다면, 그곳에서 "어린왕자"를 찾아보기를 적극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