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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r 22. 2017

죽음에 관하여

#아흔여섯의 할머니를 바라보며

할머니의 병실에 들어섰다. 삶의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음이 느껴져서 서늘함마저 감도는 병실이다. 누워계신 얼굴엔 핏기가 없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에서 나는 과거를 본다. 나를 업어주시던 모습도 같이 소꿉장난을 하던 지난 순간도.. 다 과거다. 우리는 함께 그려갈 미래보다 지난 과거를 붙잡아야 하는 순간에 와 있다.


흐려진 눈동자 사이로 어른거리는 지난날의 순간들은 중첩되고 중첩된다. 할머니는 아득한 망각의 시간 속을 헤매고 계시리라.. 할머니는 낯선 이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고 엊그제도 본 손녀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다. 10살 어린아이가 되어 방긋방긋 웃다가, 스무 살 꽃다운 처녀가 되기도 하다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인생 중반의 순간에 다다라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할머니는 기억들이 한순간 떠올랐다 침전하는 경험을 하며 시간 속을 부유하고 계신다.


그러다가 아흔여섯의 할머니로 돌아오시면 내게 묻는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냐고.. 며칠 전의 만남은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으로 흘러버렸나 보다. 그저 사람이 그리워 매번 눈물짓는 모습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워 몸들 바를 모르겠다. 거동이 불편하시면서도 겨우겨우 병상에서 몸을 옮겨 옆에 누우라는 그 모습을 보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다.


할머니는 종종 후회되는 일들을 말씀하신다. 젊었을 때 더 많이 다니고 더 좋은 것들 많이 보라고.. 당신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날개가 있었으면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도 많은데 이제는 갈 수도 없다고.. 더 좋은 곳에 모셔가지 못한 것이 더 좋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그렇게 그리워하시던 집에 한 번 모시고 가지 못한 일이 평생 죄송함과 미련으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진통제 없이는 버티실 수 없어서 병원에 계셔야만 하는 모습이 가슴에 와 박힌다.  


이제는 실감이 난다. 이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떠밀려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끝인 걸까?


예전에는 죽는다는 것이 무조건 두렵고 나쁜 것인 줄로만 생각했다. 단 한 번도 준비해보지 못하고 그저 들어 들어 알게 된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죽으면 끝이라고 허무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이 너무 슬프고 아픈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너무 슬퍼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은 무조건 슬퍼하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은 시간이 할머니의 기억에 남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순간순간을 추억으로 채워야 하고 더 많이 봐야 하고 더 많이 손 잡아야 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더 많이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한다. 지금의 순간을 사진으로든 동영상으로든 남겨두어야 하고,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조금씩 커갈수록 할머니는 조금씩 늙어가셨고 내가 어른이 될수록 할머니는 아이가 되셨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 모습도 사뭇 달라졌다. 나는 할머니가 보여주시던 세상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듣는다. 할머니가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하셨듯 나 역시 나의 사람들과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시대 끝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우리 모두는 때가 되면 다음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우리가 누렸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할머니 역시도 그런 순간에 계신다. 다음 세대에 자릴 내어주고 한 시대를 함께했던 이들과 떠나는 일, 그것이 때로는 모두를 위한 길임을 이제야 조금 깨닫는다.  


비록 우리 모두에겐 한 시대를 마감하고 떠나야 할 순간이 오겠지만, 우리는 영원히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기억에서 살아 숨 쉬며, 어느 날 문득 떠올릴 냄새에 묻어 있을 것이고, 어느 날의 눈물에 반짝하고 비칠 것이다.


또 아주 먼 훗날에 그 아이들이 또 다음 세대에게 자릴 내어주고 이별하는 순간이 오다면 우리는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겠지만 할머니는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계실 것이다. 내가 할머니 나이가 돼서 지난날을 헤매다 지금의 우리를 마주한다면 그땐 조용히 미소 짓고 싶다. 아마도 오래지 않아 우리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언젠가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면.. 내 누렸을 젊은 날의 날들과 살아왔던 시간을 다음의 누군가에게 돌려주며, 더 먼 훗날의 재회를 약속하며, 웃으며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눈물에 휩쓸려 눈물에 나를 맡기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축제가 끝난 뒤의 황홀함과 아쉬움을 영혼에 묻으며 웃으며 떠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바라본다.


내 사랑하는 할머니와 어른들미련과 후회가 아니라 축제의 향연을 느끼며 환히 웃음 짓길.. 떠나는 그 순간 눈물이 아닌 웃음으로 부디부디 인사할 수 있기를.. 우리 언제고 함께 할 테고, 나 역시 눈 감게 될 그날 결국은 다시 만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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