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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n 20. 2017

큰 할매, 안녕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마직막 눈 맞춤

금요일은 삶에 치여서 할머니 병원에 가질 못했다. 나는 시간이 며칠 남지 않은 할머니를 지켜보면서도 아득하게 남아있는 내 삶을 걱정하고 또 걱정해야 했기에..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할머니 병원에 못 가고 집에 간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후회로 남을 줄 알았었다면 차를 돌렸을 텐데.. 나는 그러질 못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눈이 떠졌다. 토요일 새벽 몇 시쯤 된 듯한 시간. 삼촌의 전화를 받았다. "얼른 병원으로 와라. 할매 곧 가실 것 같다."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스프링이 튕기듯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깨웠다.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말에 엄마는 잠시 멍한 표정이었다.

엄마의 할매. 나의 큰 할매. 외할매 댁에서 클 때 매일 나를 업고 시장으로 학교로 구경 다녔던 우리큰 할매. 정이 많아서 다른 이들 챙기지 못하면 큰일이 나는 우리 큰 할매. 삶이 힘들어서 병원을 찾아가 엉엉 울기라도 하는 날에는 함께 울어주시던 우리 큰 할매. 집에 돌아가시는 게 소원이셨는데 그렇게 해드리지 못해 늘 죄송했던 큰 할매. 영원히 곁에 있을 것 같던 큰 할매와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병원을 가는 길은 한산했다. 다만 오늘날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에 들어섰을 때도 눈물이 나거나 슬프지 않았다. 먼저 와 계신 어른들께 인사를 드렸다. 엄마는 할머니의 병상으로 다가갔다. 엄마가 할머니의 귀에다 대고 울음을 토하며 말했다. "할매, 편히 가시래이... 고맙데이..." 할머니는 듣고 계셨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으셨다. 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우리의 시간이 멈추어 버리기만을 바라며 서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고 엄마의 울음소리도 계속됐다. 너도 할머니께 인사드리라는 어른듣의 말이 두어 번쯤 들렸을 때야 비로소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매... 내 왔다." 나는 그렇게 짧은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바위 두 개가 얹혀있는 듯 무겁던 눈꺼풀이 힘겹게 움직였다. 겨우겨우 눈을 뜨시고 나를 바라보던 할머니께 고개를 끄덕였다. 활짝 웃음도 지어보려 노력했다. 1초? 2초?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눈 맞춤에 우 지난날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 등에 업혀  소를 보러 다녔던 우리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사력을 다 해서 내 얼굴을 바라보던 할머니께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아무 말이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으로 눈을 맞췄다.  


영정사진

나는 며칠 전 맡겨두었던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찾으러 가야 했다. 내가 맡겼으니 내가 찾아야 했다. 가장 환하게 웃고 계시던 그 모습 그대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비울 잠깐의 시간도 두려웠다. 마지막 배웅을 함께하지 못할까 봐..


할머니의 귀에다 말했다. "할매! 잠깐만.. 잠깐만.. 다녀올게. 먼저 가면 안 된데이.. 내가 사진 이쁘게 만들어 올 동안 기다려야 된데이.." 말은 마쳤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고 목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지금 뱉지 않으면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날까지 후회할 것 같았다.


"할매.. 고맙데이.. 잘 키워줘서... 억수로 고맙데이... 할매.. 있잖아.. 우리 꼭 다시 소 보러 가자.. 꼭 같이 가자. 그때는 내가 업고 가자........... 진짜.. 음... 진짜.. 사랑해. 많이많이. 들었어? 사랑한다고.." 연인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도 뱉을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인데 참 어렵게도 뱉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계신 이후로 늘 병원을 나서면서 '할매, 키워줘서 고맙데이' 하는 인사와 '할매, 사랑해!' 라는 말을 일부로라도 더 하려고 애썼는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저 말들이 목에 막혀 나오질 않았다.


사진관에서 활짝 웃는 할머니의 사진을 받아 들자 할머니가 너무 밝게 웃고 계셔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어봤다. 그렇게 밝은 영정사진이라니.. 내가 가장 오래도록 마주할 할머니의 모습 이리라..



내가 사진을 찾아 돌아오던 순간까지 할머니는 나를 기다려주셨다. 평온한 표정으로..


오후 4시쯤 우리는 다시 만나기 위해 안녕을 고했다.


삶의 의지

"운명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울려고 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음이 슬펐다.  


나는 이제 삶이 고단하여도 찾아가 울 수 있는 곳이 없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몸을 누일 무릎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게 남겨주신 것은 슬픔과 그리움이 아니라 삶의 의지였다. 나는 누군가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사력을 다해 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나는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본 세상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버텨내야 한다.


할머니 말처럼 살다 보면 좋은 날은 너무 조금 있을 것이다. 좋은 날이 스쳐가 버리면 슬프고 아픈 날이 오지만 그래도 또 살다 보면 다시 좋은 날이 온다셨다. 인생은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시던 그 말을 가슴에 세기고 살아야 한다.


할머니가 떠나시던 날, 장례식장으로 향하면서..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차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할머니가 고르고 고르신 날은 구름 한 점 없어 할머니를 보내드리기 서글픈 날이 아닌 하늘도 함께 울어서 더 슬픈 날도 아닌 어느 날이었다. 아주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께서 길고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기에 아주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할머니의 발인날. 이제는 정말 안녕이구나 하는 것이 실감 났다. 외할머니 댁에서 유품을 챙겼다. 우리 할머니는 90년을 넘게 사시 고도 짐이 많지 않았다. 참 욕심 없이 살다가셨구나 싶었다.


생전에 할머니는 평생 쪽진 머리를 하고 계셨다. 돌아가시기 일이 년 전쯤에 짧은 머리를 하셨지만 평생을 비녀를 꼽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셨다. 할머니가 가장 오래도록 함께하셨을 그 물건들을 같이 넣어서 보내드리고 싶었다. 참빗은 찾았는데 비녀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럼 머리 빗고 뭘로 쪽지시나 싶었다.. 미리 알았으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그래서 내가 손수 만들어서 넣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뭇가지를 꺾고 꽃으로 장식해서 비녀를 만들었다. 실도 할머니가 생전에 쓰시던 것으로 엮었다. 우리 할매 머리에 꽃 비녀 꽂으면 참 곱겠다 생각하며 함께 보내드렸다.

우리 할머니 이제 남편도 만나시고 먼저 보내 가슴에 한으로 남은 큰아들도 만나시겠지.. 나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이별도 없다.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벌써 그립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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