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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l 07. 2017

희망 그리고 사명감 갖기

Project Number 01. 내 등에 기대(등대) #3

Project Number 01. 눈물이 밑거름이 되어

희망, 다시 살기

재수 생활이 시작됐다. 다시 살기 위한 희망의 날들이 시작됐다. 후회 없을 만큼 공부해보고 싶었다. 남을 탓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결과를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 번만 더 믿어달라고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엄마와 약속도 했다. 공부는 힘들었고, 시험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적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다리를 떠는 사람이 있으면 고통스럽다던가,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으면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는 등의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그 정도로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글로 위로를 받다

재수를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습관을 갖게 됐다. 짧은 단어부터 긴 글까지.. 무작정 썼다.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어느 날 문득 글이 나를 위로해주고 있음을 알게 됐다.

글은 내게 치유였고,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위로를 받았다. 나의 글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가 받은 위로를 나누고 싶었다. 다른 누군가의 상처도 함께 치유하고 싶었다. 나는 글이 갖는 힘을 믿었다. 그래서 재수를 하는 내내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문학이 됐든 수필이 됐든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국어국문과를 목표로 공부를 했다.



주말이면 김밥을 사서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운동장을 보면서 혼자 식사를 하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다녔던 곳이었다. 8살, 초등학생의 나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을까?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고 그런 것들을 글에 담았다. 그곳은 위로의 장소였고, 사색의 공간이었으며, 추억의 장이었다.


수능이 끝났다. 나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새롭게 시작될 생활을 꿈꾸며 들떠있었다. 수시는 모두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했다. 그러나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정시가 남아있었고 원서를 쓸 3번의 기회가 있었다. 당연히 국어국문과를 생각하던 나의 진로를 단숨에 바꿔버릴 뉴스를 보게 됐다.


중학생 자살사건

그해 12월 나와 같이 학교폭력과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중학생 자살사건을 연일 보도하며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앞다퉈 문제삼았다.


마음이 아팠다. 아프다기보단 마음이 저렸다. 나는 그 친구와 나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학생이 다녔다던 D중학교. 나는 D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그 친구 가세상을 떠난 12 월 20일.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나는 살아있어서 생일을 맞이했는데.. 그 친구는 그 날 세상을 떠났다.   


뉴스에 D중학교 교감 선생님이 나오셨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으나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수업을 들었던 분이셨다. 교감선생님께서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습니까? 다른 애들이 멋있게 보고 뛰어내리면 어떡하려고 책상에 꽃을 놓아둡니까?"라고 하셨다는 사 역시 봤다. 교감선생님께서는 담임 선생님은 아니셨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참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셨다. 그래서 더 많이 놀랐다. 떠난 친구를 위해서 꽃 한 송이 놓을 수도 없을 만큼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선생님들께서 그 친구의 을 방문셨고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울고 계신 모습을 봤다. 나는 그 모습에서 우리 엄마를 봤다. 내가 만약 일 년 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우리 엄마가 저렇게 울고 계셨겠지.. 우리 엄마는 딸을 잃었을 텐데.. 우리 엄마는 희망을 잃었을 텐데.. 우리 엄마는 세상을 잃었을 텐데..

마지막으로 탔던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쪼그려 앉아 눈물을 훔치던 아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쓸쓸한 뒷모습에서 나를 봤다. 일 년 전,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가던 내 모습이 겹쳤다.


  




사명

나는 누구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안다. 내가 그런 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어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경험을 가진 교육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책으로 읽어서는 느낄 수가 없다. 그냥 듣기만 해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공부도 그럭저럭 해봤고, 노는 학생으로 보이기도 해봤고, 따돌림도 당해본 나 같은 사람도 한 명쯤은 교육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도 하나 정도는 교육자의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명만이라도 나를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도울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죽을 듯이 힘들었던 지난날의 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의 경험으로 삼아야만 했다. 그런 고통의 순간들이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찾아온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경험을 통해서 사명의식을 갖게 됐다.


대입 원서 마감 며칠 전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사범대에 진학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평범하게 순탄하게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셨겠지만.. 나는 쉽지 않은 길이라도 그 길을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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