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Number 01. 내 등에 기대(등대) #2
Project Number 01. 내 등에 기대(등대) #1
Project Number 01. 눈물이 밑거름이 되어
Project Numner 01. 눈물이 밑거름이 되어
고독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담임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아이를 중학교 때부터 보아온 분이셨다. 그 아이가 주도하는 무리에서 한 명이 떨어져 나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 그 아이가 내게 어떤 행동을 할지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셨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갈구하면서도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두려웠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불러서 내 이야기를 하면 더 큰 보복이 되어 돌아올까 두려웠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하루 있다. 지루한 비가 이어지던 장마의 어느 날. 나는 어김없이 혼자 급식소에 갈 용기가 없어 교실에 남아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 물으셨다. "왜 밥을 먹으러 가지 않았니?" 나는 대답했다. "배가 안 고파서요.." 사실 나는 배가 너무 고팠다. 정말 너무 고팠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급식소에 혼자 가는 것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한 가지 더 질문을 하셨다. "요즘 무슨 일 있니?"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 정신 좀 차려라. 요즘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니?" "................"나는 뭐라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아무 대답이 없는 내게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고 교실을 나가셨다. 혹시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랑 다툰 것은 아닌지, 혹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으셨고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자습 시간이 돌아왔다.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공간이 너무 무서워서 복도에 있는 신발장 위에 걸터앉아 책을 봤다. 고독했다. 창밖은 온통 무채색이었다.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비는 운동장의 물웅덩이들을 만들고 있었다.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몸을 조금 숙이면 이 모든 게 끝날까?
자살처럼 무시무시한 생각이 아니었다. 죽음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일 뿐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그날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비를 맞았다. 얼굴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이 계속 흘렀다. 현관문 앞. 심호흡을 했다. 엄마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재빨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나왔어!" 최대한 쾌활하게 말했다. "비 많이 맞았어! 얼른 씻고 나올게!" "우산 안 가져갔었어? 전화하지.." 등 뒤에서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나는 교복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세면대 물을 틀고 샤워기도 틀었다. 양쪽에서 물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소리 죽여서 울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울고 또 울고 토해내듯 울었다.
언어폭력
어느 누구도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이는 내가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였다. 우리가 공유했던, 우리가 친구이기에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은 조롱이라는 독이 묻은 화살이 되어 가슴에 와 박혔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문자를 보는 것이 두려울 만큼 무시무시한 말들이 핸드폰 액정을 채웠다. 이름 모를 선배들로부터 날아왔던 무작위의 욕설과는 다른 언어폭력이었다. 엄마를 조롱하고, 가족을 조롱하고, 나의 꿈을 조롱하는.. 철저히 가슴을 후벼 파는 말들로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아이는 항상 다리를 떨었다. 모의고사를 치면 늘 내 대각선에 앉았다. 그리고 다리를 떨었다. 멈추고 싶었다. 시험 칠 땐 다리를 떨었고, 쉬는 시간이면 그 자리에 무리들을 모아서 나를 욕했다. 들으라는 듯 말했다. "우리 학교는 걱정 없겠네! 친구도 버리고 엄마도 팔아서 공부하는 년이 있는데 서울대는 그냥 가겠지." 뻔히 들리는 조롱에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못 들은 척 책을 봤다. 읽고 있는 어떤 글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내 모습이 수치스러웠다. 시험이 시작되면 내가 들었던 조롱과 욕설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귓속에서 계속해서 재생되고 또 재생됐다. 나는 내가 들었던 뾰족하고 아픈 말들을 수백 번, 수천 번 다시 들었다. 시험에도 공부에도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수능을 망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수능이 다가왔다. 참아내면서 겨우 버텨왔던 내게 수능은 마지막 희망이자 탈출구였다. 나는 시험장에 다리를 떠는 사람이 있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매번 모의고사를 맨 뒷자리에서 치던 나였지만 수능 시험장에서는 앞에서 세 번째 줄이었다. 너무 좋았다. 그러나 시험 날 얼굴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대각선에 앉아서 다리를 떨었다. 그 아이와 전혀 다르지 않은 폼으로. 나는 수능을 치고 있는데.. 마치 모의고사를 치는 듯했다. 귓속에서는 계속 괴롭히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선 안될 그런 말들이 끊임없이 울렸다. 울고 싶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쳐나가버리고 싶었다. 나는 이런 핑계 들로 수능을 망쳤다.
천장만 보고 있었는데 날이 샜다. 그런 밤이 이어졌다. 내 탈출구가 사라져 버린 기분이었다. 엄마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지독하게 괴로운 일이었다. 스스로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졌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포였다. 나는 말을 잃었다. 말이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가 없었다. 학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학교에 가서 날 이렇게 만든, 나를 괴롭힌 애들에게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의지도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청소년 상담전화 1388 전화를 걸었다.
맞다. 살고 싶었다. 나는 살고 싶었다.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과 희망을 안고 살고 싶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희망을 잃은 듯 보였다. 나는 재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수능을 다시 치기 위한 재수가 아니라 다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