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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l 19. 2017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걱정하고 어제를 그리워하는 우리

시트콤 인생

나를 몇 년 정도 알고 지낸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해주는 말이 있다.

"네 인생은 너무 시트콤이야. 평범하게 좀 살 수는 없어?"

내가 이런 말을 자주 듣는 이유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라던가 내가 너무 뛰어난 일들을 해서가 아니다. 그냥 내게 다른 사람한테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살면서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날까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날아오는 농구공을 쳐냈더니 손가락이 부러졌다. 뼈를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부러졌다면 다행일 텐데, 분쇄골절로 인해 손가락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마취 주사를 맞고도 마취가 잘 안돼서 마취주사를 두 번 맞았다. 그런데도 수술 중간에 깨어나버렸다. 온통 신기한 수술방 풍경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선생님, 다시 재워주세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처음에는 나름 공부 좀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선배들한테 괴롭힘도 당해보고, 노는 애도돼보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왕따도 당했다. 수능은 망쳤고 재수를 결심했다. 재수 직전에 모으고 모아둔 용돈으로 DSLR 카메라를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셔터를 누르는 순간 갑자기 렌즈에 먼지가 꼈다. 카메라를 고치고 사진 몇 장 찍다 보니 재수생활이 시작됐다.


재수 생활이 한참이던 20살 여름, 냉방병에 걸려서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병원을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지만 점심시간이라 급식 운반하시는 분들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계단 코더를 돌 때쯤 야한 소리가 들렸다. 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려고 했다. 코너를 돌았을 때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5년을 좋아했던 첫사랑과. 여자 친구가 나를 볼 수 없도록 꽉 껴안는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하필이면 왜.. 저 애를? 하필이면 왜 지금? 두통이 배가됐다. 그 해 여름, 냉방병 때문에 버스 창문을 열어놓고 가고 있었는데 밖에서 뿌린 물을 맞았다. 창문을 조금만 열었기에 망정이지 많이 열었으면 물을 쫄딱 맞을 뻔했다. 수능 치기 일주일 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 발인이 끝나니 수능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학에 가면 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이어졌다. 남자 친구가 서울을 가면서 차를 집에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출장을 가셨으니 걱정 말고 가져다 두면 된다고 했다. 다음날 가져다 둬도 된다는데 굳이 그날 밤늦은 시간에 차를 세워두러 갔다. 지하 주차장까지 갔지만 빈자리가 없었다. '아휴.. 그냥 내일 다시 가져다 둬야겠다. 어차피 집도 가까운데..'라고 생각하며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왔다. 반대편에서 검은색 차 한 대가 다가왔다. 피해서 가려는데 그 차가 점점 속도를 줄였다. '어? 저 차는...?' 본적이 몇 번 있는 차였다. 남자 친구의 차가 고장 났을 때 갖고 왔던 아버지의 차. "아.. 어떡해..... 망했다.." 그래. 나는 망했다. 출장 가셨다던 아버지가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계셨다. 나는 그때까지 남자 친구의 아버지를 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다소곳하니 예쁘게 꾸미고 만나도 시원찮을 남자 친구의 아버지를 차도둑으로 만나 뵙게 됐다. 피할 수 없는 순간. 아버님께서 조수석 창문을 내리셨다. 나는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아.. 저는... 어.. 네. 저는 차를 부탁받아서요...." 3초간 정적. "아! 00이 친구니?" "네?.. 아.. 네.. 친구요.. 네.. 제가 차를 좀 부탁받아서요....." 또 정적. "지하에 자리가 없던가...?" "네.. 지하에 자리가.. 없어서.. 제가.. 차를....... 차를.." 나는 너무 당황해서 버벅거리면서 대답했다. "아.. 그럼 밖에 주차해야 하는데.. 내가 차 돌려서 올라올 테니 따라와요." "네.."


차를 돌려오신 남자 친구 아버지를 따라서 아파트 밖에 주차를 했다. 차키를 전해드리려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그날따라 짧아도 너무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아......' 어쩔 수 없었다. 차 키를 전해드리며 편히 쉬시라고 말씀드리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왔다. 갑자기. 얼마 후, 내 차를 갖고 남자 친구를 데려다줬던 적이 있었다. 그때와 같은 위치에서 농담으로 말했다. "저 반대편에서 오빠네 아버지가 감자기 나타나셨다고!! 어어!! 저기 오는 차처럼... 어?!!!!!" "어! 아빠다!" 내 차를 모르시던 아버님은 그냥 지나쳐가셨지만 두 번이나 그렇게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하필 그 말을 하는 순간에 그렇게 기가 막힌 순간에 말이다. 지난번이랑은 다른 요일, 다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팔자와 타이밍

이 외에도 참 많은 일화가 있다.  나는 왜 시트콤처럼 사는 걸까? 그냥 무난하게 흘러가면 안 될까? 왜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신기해할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그런 팔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한테 왜 9개월 만에 낳았냐고, 한 달 더 데리고 있다가 낳아주지라고 푸념했다. 엄마는 내가 너무 별나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별나서 빨리 나온 거지 엄마가 빨리 나오라고 그랬던 건 아니라고.. 또 내가 너무 덜렁대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내가 덜렁대서 인생이 다이내믹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타이밍의 문제다.

몇 분만 늦거나 빨랐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아니 몇 초 차이로도 내게 저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 때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이유는 급식소에서 특정 선배를 째려봤다는 이유에서였다. 만약 내가 그날 밥을 엄청 늦게 먹거나 엄청 빨리 먹었다면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를 일이다.


내 일상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나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굳이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나냐고 생각할 것도 없다. 그냥 그 순간에 타이밍이 맞아서 일어났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

지나고 보면 황당하고 시트콤 같던 순간들이 그리움이 되고 돌아갈 수 없는 나날들의 한 페이지로 남을 뿐이다. 오늘 내가 독특한 경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삶이 어서지 그 일 자체가 독특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평범해 보이는 일이 내 일이었으면 그 일이 특별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특별한 일들도 다른 사람 눈에는 평범한 일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그리워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날그날의 재미있는 요소들과 기억에 남는 것들을 갖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오늘을 그리워할 것이다. 이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을 말이다.


우리 모두의 오늘이 시트콤의 한편 같은 특별한 하루이길..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의 한순간이 되겠지만 후회 없었던 젊은 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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