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 Sep 28. 2017

괜찮은, 가을

#내가 싫어했던 계절로의 여행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니 생각이 줄어든다. 내 머릿속을 배회하던 많은 생각들이 구름 되어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오늘. 가을을 더욱 느껴본다.


내가 싫어했던 계절

나는 가을이 싫었다.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을 향해 다가가면 해가 점차 짧아졌다. 해가 짧아지는 것은 언제나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다. 해가 짧으면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아쉬움이 앞선다. 가을을 지나고 있노라면 또 이렇게 한 해가 끝을 향해서 간다는 기분이 든다. 무엇이든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은 내게 너무나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졸업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 아쉬운 것처럼 한해의 끝으로 향하는 것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차라리 앙상한 겨울보다 낙엽이 지는 가을은 내게 더 큰 상실감이었다. 


가을의 어느 날에 치러지는 수능을 망쳤던 경험과 겨울에 치러지는 시험을 2년간 준비했던 경험이 가을을 더욱 싫어하게 만들었다. 수능 시험을 망치고 바라보던 가을 하늘과 선선한 바람 그리고 낙엽은 실망과 상실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겨울에 있을 시험을 준비하던 가을은 불안과 걱정으로 점철되었다. 가을을 빛나게 하는 푸른 하늘, 코스모스 그리고 단풍은 언제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먼 존재들이었다. 가을의 어느 날은 언제나 낮인지 밤인지 모를 독서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쏟아부은 시간들이 허무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게 내가 느꼈던 가을이었다. 


분명 가을은 아름다웠으리라. 내가 가을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


가을 여행

올해 가을은 평소와는 다르다. 다른 기분과 다른 마음으로 가을을 지켜보고 있다. 여름 하늘에 가을이 점차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봤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봤다. 코스모스가 가득한 곳에서 코스모스를 실컷 구경했다. 코스모스는 봄에 피어나는 어떤 꽃들 못지않게 예쁜 꽃이었다.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어딘가를 직접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여름의 온기가 남아있는 공기에 불어오던 선선한 가을바람과 그 바람에 한들거리던 꽃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함께 코스모스를 바라보던 이의 눈빛과 마음도 잊을 수 없다. 코스모스를 보여주겠다던 그 예쁜 마음과 사소해서 더욱 소중한 배려들이 가을을 채워주고 있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보지 못했던 가을을 이번에서야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번 가을여행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빛나는 추억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이 빛나는 순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겨울이 오기까지 끝나지 않을 이 가을 여행에 젊은 날의 추억과 열정을 가득 담아두고 싶다. 언제고 돌아보아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2017년의 가을이 되도록 말이다.. 


다름 마음

다른 마음은 다른 시각으로 가을을 바라보게 한다. 


나는 가을을 꿈을 위해 불안감을 참아내야 했던 계절이 아니라 꿈을 이루는 계절로 기억하고 싶다. 청춘의 한 순간이 또 하나의 끝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춘의 한 순간을 오롯이 즐겼던 젊은 날로 기억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다른 가을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가을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볼 때면 때론 그런 의문이 든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일까?  

누군가는 돈을 좇아서 살고 누군가는 명예를 좇아서 살고 또 누군가는 안정감을 쫓아서 살아간다. 그러나 내가 쫓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안정감도 아니다. 나는 도전해야 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돈도 명예도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선택에 후회가 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선택한 길에 어떠한 미련도 없다. 후회와 미련 중에 더 남기고 싶지 않은 하나는 미련이다. 도전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보지도 못하고 미련을 남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두컴컴한 독서실에 앉아 책장만을 넘긴다거나 꽉 막힌 사무실에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기계적인 업무를 본 후에, 나는 왜 청춘이 있었는데 도전하지 못했나 하는 미련으로 아쉬워하고 싶지 않다. 나는 왜 젊은 날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길만을 갔나 하고 자책하고 싶지 않다. 


돈을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김구

나는 직업에 따라 일하고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명에 따라 일하고 선물을 받아보고자 한다. 그것이 저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하지 않은 평범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