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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l 05. 2018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살고 싶다고

#모든걸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라는 마음의 신호

시험을 준비했던 길었던 수험생활이 끝났다. 하루 10시간을 넘게 독서실에 앉아 책을 봤고, 너무 간절해서 눈물 흘리던 날들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내가 받아 든 결과는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였다. 더 이상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슬퍼하거나 마음을 다독일 여유가 없었다. 당장 새롭게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 다시는 올라올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다른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결과 발표가 난지 3일 만이었다. 4일째 되던 날 나는 다시 독서실을 찾았다. 다시 마주한 캄캄한 어둠 속에 덩그러니 조명이 켜져 있는 책상. 답답하기도 했고 힘들었지만 독서실에서의 순간들은 견딜 수 있었다. 새로 산 책을 펼쳐보고 공부 계획을 짜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불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준비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남들은 반년, 일 년, 몇 년을 준비하는 시험에 고작 3달여 만에 도전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알았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해야만 했다.

그래서 죽도록 불안했다. 이 시험에 떨어지면 난 어떻게 되지 하는 불안이 나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했다.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있지 않았다.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저 캄캄한 독서실에 앉아 불안에 떨고 있었다.


봄. 그러나 겨울

밖에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고 봄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독서실은 여전히 추웠다. 히터를 틀지 않으면 한기가 들었다. 봄이 왔지만 난 여전히 겨울을 살고 있었다. 내 마음은 걱정으로 꽁꽁 얼어붙었고 불안이란 눈이 끝없이 내렸다. 결국 온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들로 뒤덮여버렸다.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살고 싶었다. 


난 죽음을 떠올린 적이 없었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이 여기서 멈춰 서길 간절히 바랐다. 온 세상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가버리길..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미련이 조금은 남아도 이 정도면 괜찮다 싶었다.


나는 한계였다. 도저히 더 이상 독서실에 있을 수 없었다.


벚꽃엔딩

벚꽃이 막 봉우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던 4월의 어느 날, 이른 벚꽃을 보러 갔다. 너무 이른 벚꽃과 흐린 날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꽃은 예쁘다 못해 찬란했다.


그리고 그날 뇌수막염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쌓인 모든 것이 한 순가 폭발해버린 듯한 극심한 두통. 머리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고 눈을 깜빡이는 것 마저도 두통이 되는 고통의 순간 나는 불안과 걱정을 멈출 수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새햐얘진 마음속에 뜨거운 용암이 흘러내렸다.


척수를 뽑아 뇌수막염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이러다 죽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 살고 싶긴 했는데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뇌염이라면 치사율이 높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만 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였다.


입원해있던 시간 동안 벚꽃은 만개했고 져버렸다. 벚꽃엔딩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엔딩이 아니었다.


쉬어가기

모든 것을 멈췄다.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리고 달려왔다. 이러다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을 때까지 달렸고, 이제는 멈춰야 할 때였다. 시험도 그만뒀다. 그 시험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참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그래 살아있으니 하늘도 마주 볼 수 있구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있자니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은 어느 쪽 인가도 문득 떠올랐다. 


어느 누구도 내게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속에 얽혀있던 것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면서 자연스레 답을 찾았다. 쉼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모든 걸 놓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잠시 쉬어가라고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물론 쉰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신호를 무시하면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하루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모든 걸 멈추고 잠시 쉬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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