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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an 06. 2019

운명이 내게 물었다. "넌 앞으로 어떻게 살거니?"

#내가 답했다. "그건 비밀이야. 내가 알아서 할게.."

운명
운명 :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 

나는 운명이란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운명이란 단어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운명은 마치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체계적으로 짜여진 시스템 같다. 나는 거기에 필요한 아주아주 작아서 없어도 기계 운영에 아무 지장이 없는 부품 하나에 지나지 않는 느낌이다

게다가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말도 운명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음만 같고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누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운명'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마치 그 죽음이 정해져 있던 일처럼 느껴져서 더욱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세상에 운명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단어란 어떤 물체나 현상을 보고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무엇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처음 운명이란 말을 만든 사람은 왜 운명이란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모든 삶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아무거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삶이 이어지고 일어나야 할 일들이 일어날까? 아니면 어떤 힘에 의해서 나는 운명대로 살아갈까? 인간이라는 존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운명을 바꿀 수 없는 걸까? 내 운명은 어떤 운명일까?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어떤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성격이 더러운 겁니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운명이라는 단어를 거부하면서도 그 운명이란 것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길을 알고 싶었다.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듯 목적지까지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누군가 알려주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자주자주 사주를 보러 다녔다. 꽤나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운명에 대해서 듣고 싶어 했다. 마음이 힘들수록 더 그랬다. 마치 내 미래를 알 것만 같은 누군가로부터의 잘 될 거라는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여기저기 내 운명을 물어보고 다녔다. 


그러다가 우연히 찾아간 철학관에서 운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보았다. 내 미래를 이야기하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제 팔자는 왜 이렇게 더럽나요?"


그리고 깜짝 놀랄 답이 돌아왔다. "팔자는 곧 성격입니다."


'아.. 나는 성격이 더럽구나... 하긴 꼬일 대로 꼬여있지...'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똑같은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는 배경에는 그 사람의 성격이 있을 것이다. 성격으로 대변되는 나라는 사람과 지난 시간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고 또 새로운 성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 지난 시간들을 채워온 것은 나의 선택이었고, 내 남아있는 시간들을 채워가는 것도 나의 선택이다. 성격이 달라지면 내가 달라질 것이고, 내가 달라지면 내가 내리는 선택이 달라질 것이고, 다른 선택은 다른 삶을 만들 것이다. 


나는 후회되는 과거가 많다. 경제적인 이유, 부모님의 기대, 주변 환경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것들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이 초라하고 고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정을 내린 것은 '나'였다. 더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고,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싶었고, 안락함 속에서 자존감을 채우고 싶던 내 성격과 내 생각이 그런 결정들을 내려왔고 내 삶은 만들어왔다. 


내 선택의 결과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몫으로 남았다. 내 몫이 내 인생이고 그 몫을 겪어내며 또 새로운 생각이 들고, 그 생각들이 성격이 되어간다.    


성격 바꾸기

지금까지 겪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생각의 틀이 바뀔까?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이 바뀔까?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말도 있겠지. 게다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그랬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사람의 생각과 성격 바꾸기가 이렇게 어렵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운명이 바뀌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성격을 바꾸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따돌림을 당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나는 살기 위해서 성격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새로운 성격이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든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스스로 정한 기준들이 목을 옥죄고 내 사람들은 어때야 한다는 기대감이 또 다른 상처로 돌아와 나를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든다. 바뀌지 않고 여전히 저 깊은 곳에 남아있는 솔직한 성격과 솔직한 모습들은 문득문득 튀어나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척이나 아프게 한다. 


나는 바뀌고 바뀌다 무척 꼬여버린 이 성격을 다시 바꿔보려고 여전히 노력 중이다.   


나는 운명에 맞서 싸워보고자 한다

다른 성격이 다른 삶을 만든다면 그것이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면 나는 운명에 맞서고자 한다. 이렇게 각오를 다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때론 두려움에 굴복하기도 할 것이다. 결국 나는 운명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나아가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있어도 나아가겠다는 의지.  


성격이 바뀐다고 운명이 바뀌어서 갑자기 로또 복권에 당첨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운명에 맞서고 싶은 이유는 조금 더 행복하고 싶어서이다. 상처 받지도 상처 주지도 않고 조금 더 행복한 삶. 나쁜 생각보다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살고 싶어서.. 좋은 생각으로 가득 찬 따듯함을 나누면서 사는 삶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나의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내 삶의 환희도 후회도 오롯이 나라는 사람의 결정으로 살아내고 싶다. 


운명이 내게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는다면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조차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내가 내리는 선택으로 만들어 갈 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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