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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Feb 11. 2016

미래를 묻다

#긍정적 자기암시를 위한 점(占) 보기

미래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한치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치란 3센티를 의미한다. 눈 바로 앞도 3센티는 넘을 것 같은데.. 우리는 눈 바로 앞. 즉, 3 센티 앞의 일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1초에 한 걸음을 걷는다고 쳐도 1초에 3센티는 훨씬 더 걸을 수 있다. 그렇게 치면 우리는 1초 앞도, 한 걸음 앞도 모른 채 사는 것이다. 하물며 미래를 안 다는 것은 인류가 달에서 산다는 것보다도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미래를 궁금해하며 살아왔다. 


미래를 알아보는 방법도 사주나 점 혹은 타로 등 각양각색이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 조금이나마 미래를 알고 준비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미래를  궁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가 궁금한 이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당연히 미래 그 자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상당한 이유는 현재에 기인한다. 현재가 미래의 불안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를 보면 핑크빛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삶이 각박해지면서 위로받고 기댈 곳은 줄어들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옛 이야기가 되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니 위기니 하는 부정적인 전망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N 포 세대나 헬조선 등의 단어들이 생겨나 우리의 현재를 대변한다. 이런 우리들의 암울한 현재가 불안을 더욱더 마음 깊이 자리하도록 한다. 만약 현재가 너무나 행복하고 좋다면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흘러가는 지금을 붙잡아두고 다가올 미래를 오지 않도록 막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현재는 암울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아닌 절망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미래를 조금 더 안다면 조금이나마 더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미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미래를 아는 것에 집착하게 되고 미래를 알려주는 듯 보이는 대상에 의지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점이든 사주든 타로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미래의 불확실성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 보인다.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미래를 겪은듯한 착각을 갖게 만든다. 건강을 조심하라고 하면 건강을 조심하고 연애라도 할 운이 있다는 이야기라도 들으면 누가 될지 모를 그 연인에 괜스레 설레기까지 하다. 나는 이런 사람의 마음을 위로와 격려에 대한 갈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너는 지금껏 잘 해왔으며 지금도 잘 하고 있어. 그리고 앞으론 모든 것이 더 잘 될 거야.."하는 응원을 대신하는 점괘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

미래를  물어보고는 우리는 좋은 말을 듣고 싶고 미래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이왕이면 좋은 말이나 듣기 바라는 말을 하려 한다.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는 마음 때문에 미래를 물어보면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답 정 너"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아마도 우리 마음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나 역시 대입에 실패하고 타로나 사주 같은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냥 아무 대학이나 점수 맞춰서 갈까요? 아니면 재수를 할까요? 이미 마음은 한 번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론을 어느 정도 내렸던 상태였지만 재수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으리라는 말을 미래를 보장해줄 것 같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타로를 두 번이나 보고 마지막으로 사주를 봤다. "이번에는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재수를 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불안감보다는 "그래, 시험 못 치는 게 이상할 정도라는데 뭐가 걱정이야"하는 낙관적인 기대감이  마음속에 자리했다. 나는 이미 재수 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고 마음의 결정도 어느 정도 내렸었지만 마치 예언과도 같은 긍정적인 이야기는 나의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미래를 알려줄 것 같은 사람으로부터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야"하는 지지와 응원이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자기암시

좋은 점괘를 들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괜스레 점의 내용과 비슷한 상황만 와도 혹시나 하면서 행동이 달라진다. 가령 누군가 곧 여자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던 여자 사람에게서도 혹시 얘랑 잘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된다. 여자친구가 생기든 그렇지 않든 여자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점괘는 듣는 사람을 기쁘게 만든다. 여자친구가 생기는 그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로 활력이 넘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를 기쁘게 만든 것은 점괘도 점을 봐준 사람도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많이 영향력을 주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를 변하게 한 것은 그 자신이다. 긍정적인 암시가 그로 하여금 더 적극적이게 되도록 도운 것이다. 답정너처럼 원하는 점괘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듣고 싶은 점괘를  들려주면 어떨까? "당신은 앞으로 무얼 해도 잘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번엔 분명 시험에 붙을 수 있을 겁니다" "상반기엔 취업에 성공할 겁니다" "올해 안에 결혼하게 됩니다" "건강이 좋아질 겁니다"등등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스스로에게 암시해보자. 스스로에게 하는 긍정적인 암시를 통해서 우리는 분명히 더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불확실성은 필연적으로 불안을 야기한다. 하지만 미래를 궁금해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예언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불안이 해결되거나 그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금 더 긍정적인 미래를 그려보고 그런 미래를 스스로에게 암시해주자.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잊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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