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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y 02. 2016

가면을 벗는 두려움

#진심을 내보였을 때 찾아오는 불편함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싶고 기대 고도 싶다. 그러나 가끔 믿을만한 사람에게 털어놓은 진심도 후회가 되는 순간이 있다. 믿을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돼서? 아마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컷 속 이야길 털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 엄밀히 따지자면 다음에 또 만나자며 오늘 재미있었다며 경쾌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그에게 진심을 털어놓은 것을 후회했다. 왜 나는 진심을 털어놓았을까?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후회하고 있는 걸까? 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면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으면서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진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더 많이 찾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나도 위선자구나. 어쩔 수 없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 개인이구나 생각한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진심을 내보이는 것에 극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아마도 믿음이라는 초석위에 털어놓았던 진심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재앙을 여러 번 겪으면서 이렇게 됐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솔직함과 멀어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에도 사람에도 어는 것 하나도 솔직하지 못한 존재가 어른이 된 내 모습이다. 더 어른이 될수록 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만 같다. 어릴 적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을 하면 엄마한테 무척 혼이 났는데 이젠 내가 아무리 거짓을 말해도 나를 혼내는 사람이 없다. 싫어하는 누군가에게 밝게 인사해도 "너 왜 사람을 거짓으로 대하냐"며 나를 질책할 사람은 없다. 나는 꾸역꾸역 진심을 가면 뒤에 밀어 넣고 사람을 대한다. 가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진심이 가면 뒤에 쌓이면 반작용이 생긴다. 그래서 가끔 청개구리처럼 누군가와의 대화 속에 진심이 와락 쏟아질 때가 있다. 


쏟아진 진심

부지불식간에 진심이 쏟아지는 것은 아마도 그 사람을 믿고 싶어서겠지. 그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겠지. 또는 내 가면 뒤에 모습을 진짜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서겠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심을 쏟아낸다. 이렇게 진심이 쏟아지는 날이면 상대방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하나하나, 그 순간의 공기마저도 내게 너무 크게 다가온다. 모든 상황에 예민해지고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제스처나 반응을 보이면 바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변명과도 같은 말하며 허둥지둥한다. 그럼에도 내가 당황했음을 보이기 싫어 더 논리적 인척, 이성적 인척 하며 주섬주섬 가면을 집어 든다. 마치 벌거벗은 모습을, 내 완전한 민낯을 들켜버린 듯 황급히 가면을 쓴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후회의 감정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와락 쏟겨벼린 진심을 후회한다.


그러나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진심을 숨기고 사람을 거짓으로 대하며 가면을 쓰고 살고 싶지 않다. 꾸역꾸역 숨기다 진심을 쏟아내듯 보이고 싶지 않다. 믿고 싶은 사람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그것을 후회하고 싶지는 더더욱 않다.


스며드는 진심  

내 진심이 다른 이의 진심에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물도 급하게 마시면 체하는데 쏟아지는 진심은 오죽할까. 천천히 조심스레 가면을 벗고 눈을 맞추며 하나하나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 생각을 말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그를 더 이해하고, 우리의 서로 다른 생각은 조금씩 맞춰가며 그렇게 그렇게 그 사람을 알아가고 싶다. 성급하게 진심을 보이고 그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이해해가고 싶다. 관계에 들이닥친 강진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진심을 쌓고 싶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 한 두 사람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그 사람을 대하고, 진심을 주고받는 것이 두려운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되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가면을 벗고 천천히 진심을 보여야겠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욕심이겠지만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내 곁에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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