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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y 24. 2016

어제 만났던 내일, 내일 만날 어제

#오늘을 붙잡아둘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일출과 일몰

일출일까? 일몰일까?


어느 날 새벽,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우연히 보게 된 창밖 풍경에 가던 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내가 아침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해가 지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구분이 안 가는 순간이었다. 문득 시간이란 너무 상대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지금을 해가 지고 있는 순간이라고 믿어버리고, 그냥 침대로 들어가서 푹 쉬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잠을 잘수록 어둠이 아닌 햇살이 깊어지겠지?


시간은 알고 싶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의 무언가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이 아무리 많은 발전을 이루고 과학 지식을 쌓는다 하더라도 시간을 이해하고 시간을 통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말이다. 우린 그저 시간의 어딘가에 잠시 잠시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시간의 어디쯤 있을까? 하루 종일 내가 시간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붙잡고 싶은 순간

나는 일몰을 가장 싫어하지만, 일몰을 가장 좋아한다.

 

어떤 날은 일몰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간혹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있을 때도 있다.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급하다. 안되는데, 지면 안되는데, 오늘이 가버리면 안 되는데, 너무 안타까운데.. 아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테고, 이렇게 기쁜 오늘이 지나가버리고 다가올 내일은 어떤 날일까? 전혀 기쁘지 않고 슬프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만큼 기쁜 날은 지는 해를 붙잡아두고 싶다. 

특히나 운전을 하다가 일몰을 마주하는 날에는 기분이 더욱 이상하다. 사이드 미러를 통해 해가 막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행복한 하루가 지는 것이 그리고 내게 남은 하루의 날이 지나가버렸다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 당장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내가 마주할 날들의 끝에 다가가고 있음이 일몰을 통해서 실감 나서 가슴속에 무언가 울컥한다. 눈 부신 저 주황색 점이 천천히 사라지길 전전긍긍해도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주황빛은 사라지고 그 잔상만 눈 가득 남는다.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오는 보랏빛 하늘. 그 위로 까만 잔상만이 어른 거리기도 잠시, 이내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리곤 캄캄한 밤이 찾아온다. 마음에도 어둠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슬픈 날에는 일몰이 무척 기다려진다. 빨리 오늘이 지고 내일은 더 기쁘고 웃음이 가득한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일몰을 맞이한다. 가만히 있어도 결국엔 흐를 시간이지만 마음이 아프고 힘든 날에는 일몰이 유독 더디게 오는 것 같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오늘이 무척이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서로 다르지 않은 일몰을 바라보며 동전 양면보다 멀리 있는 마음을 이리저리 뒤집는 나는 참 모순적인 사람이다. 사실 내게 일몰은 애증의 대상이라기보단 두려움의 대상이다. 일몰을 기다리며 혹은 일몰로부터 도망치며 슬픈 날은 기쁨의 순간을 기다리고 기쁨의 순간엔 닥쳐올 슬픔의 날들을 걱정하다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도 모르는 새 마지막 일몰을 맞이하는 날이 오면 어쩌지? 나의 날들이 덧없이 흘러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말이다. 


또 일몰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시간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루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가 가면 나는 그리고 내 시간은 어디로 흐를까? 일몰이 마치 시간의 바늘을 돌리고 있는 건전지와 같이 느껴져서 일몰이 오는 것을 막으면 마치 시간이 가지 않을 것 같은 공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어제 만난 내일과 내일 만날 어제 사이

나는 겨울보다 여름을 더 좋아한다. 밤은 짧고 낮이 긴 게 좋아서 인 것 같다. 여름엔 뭔가 일몰을 봐도 덜 아쉽다. 하루가 긴 것만 같아서.. 그러나 아무리 낮이 긴 여름이라도 일몰은 다가오고 결국 해가지고 밤이 찾아온다. 일몰이 없다면 밤도 없겠지만 그렇다면 일출 또한 없을 것이다. 일몰도 일출도 없이 그냥 주어진 어는 날엔가 갇힌다면 시간은 멈출 수 있겠지만 우린 그저 어떤 순간에 박제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실험실의 박제된 동물과 다를 바 없는 매일의 순간들이 이어질 것 같다. 기쁜 날이 이어질지 슬픈 날이 이어질지 알 수 없으니 어느 날 갑자기 일몰이 사라지는 일은 없길 바란다.


어제 내가 마주한 일몰은 어제 만난 내일이다. 내일 아침 내가 마주할 일출은 내일 만날 어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오늘이 있다. 


오늘은 마치 나의 어제와 내일을 이어주는 시간의 고리와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이다. 슬펐던 어제를 오늘 또다시 슬퍼할 이유는 없다. 내일 닥쳐올 슬픔을 오늘 슬퍼할 이유도 없다. 기뻤던 어제를 오늘 그리워할 이유는 없다. 기뻐할 내일을 넋 놓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는 내가 행복하냐 하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순간이 오늘인데, 어제와 내일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오늘을 오늘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는다. 오늘을 온전히 오늘로써 살아가면 나의 오늘이 모여 과거가 되고 나의 새로운 오늘들이 내 미래가 될 것이다. 왜 사람들이 현재를 선물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 선물은 제때 풀어보고 기뻐해야지 선물이지 시간 지나서 보면 막 선물을 받아서 풀어봤을 때만큼의 감흥이 없다. 이 짧은 오늘의, 현재의, 선물 같은 순간은 지금이 아니면 별 감흥이 없는 과거가 된다. 


나의 오늘을 더 소중히 보냈으면 좋겠다. 기쁜 날은 일몰이 아쉽지 않을 만큼 더 마음껏 행복했으면 한다. 슬픈 날은 일몰이 찾아왔는지도 모르게 치열하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면 좋겠다. 분명 그 노력을 통해서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고 또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지금 있는 시간의 어딘가는 언제나 현재다. 나는 절대 과거에도 미래에도 머무를 수 없다. 당황하지 말고 방황하지도 말고 선물과도 같은 현재를 살아가자. 내일을 위해서도 어제를 위해서도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현재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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