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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Jun 09. 2016

이별

#우연히 같은 시간을 살았던 사람을 떠올리며

만남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고 한동안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서로 달랐던 두 사람의 시간이 하나처럼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수십억 개가 넘는 시간들 중에서 단 두 개의 다른 시간이 함께 흐른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그런 기적과 같은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다.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했던 순간들 말이다. 우린 남들과 다르지 않게 만났고 때론 불같이 사랑하기도 하고 누구보다 미워하기도 하며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몇백 일의 만남과 몇 시간의 기다림과 몇 분의 전화통화와 몇 초의 대답들까지도 내겐 큰 의미였으며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자체에 오롯이 내 자신을 맞춰가며 그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하자고 약속도 했었다.


이별

그러나 우연한 갈림길에 선 우리의 시간은 함께 지내온 날들이 무색하리만치 냉정하게 엇갈렸다. 함께 흘러가던 시침과 분침이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을 때, 우린 서로 다른 길을 택했고 각자의 시간 속으로 돌아갔다. 시간을 공유하다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일이며 마음을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무너져내릴 만큼의 아픔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어긋나려는 시간을 붙잡기란 우리의 능력으론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우린 이별을 맞았다. 

 

이별을 하고 나서 우린 각자의 시간을 살아갔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만났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났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순간순간은 흐릿해지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실조차도 희미해질 만큼 각자의 시간에 도취해서 살았다. 

 

조우

그러나 우연히 길에서 그를 만났던 날, 불현듯 우리가 살았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다 어느 날 우연히 헤어진 연인을 마나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잘 흘러가던 시간이 잠시 멈추는 기분이었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되고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론 그와 함께한 즐겁고 행복했던 그리고 또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순간들 역시도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힘들었던 순간들에 괴로워하는 내 자신을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그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는 그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가고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시간만을 살아가서 잠시라도 우리의 시간이 같아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다시는 흘러가는 시간의 어딘가에서 서 그를 마주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은 너무 복잡한 일이다. 같은 시간을 살았던 기적을 함께하고서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이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고 나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조차도 무의미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엔가 그를 마주한다면 그때는 웃으면서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나이를 아주 많이 먹고 젊은 날의 순간들이 행복했던 기억이든 슬펐던 기억이든 그 자체로 반짝이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같은 시간 위에서 만나게 된 그가 반가울까? 


아직 다가오려면 너무나도 먼 미래의 어느 순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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