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빛이 나는 비결 — 통도사

by 은손


언니, 내가 진짜 엄청난 절에 다녀왔어.
꼭 데리고 갈게.
어차피 나도 한 번 더 가고 싶어.

아빠와 연휴 기간 동안 부산에 놀러 간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통도사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진을 보여주면서 왜 가야 하는지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웬만한 것에는 감동하지 않는 동생이 저렇게까지 극찬하는 이유가 있을 터. 이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봐야 한다. 그렇게 2025 첫 번째 가족 여행지는 통도사로 결정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통도사에 도착하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찌나 많이 내리는지 우산을 쓰나 안 쓰나 비슷했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 산책을 포기했다. 비바람과 싸우는데 체력을 쓸 수는 없으니까. 그 대신 차로 천천히 지나갔다.


사진은 강미옥 사진가의 작품

창문을 내리고 솔내음을 힘껏 마셨다. 봄비 특유의 싱그러운 에너지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래, 이 맛이야. 어떤 소나무는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어떤 소나무는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소나무가 서로 가지를 맞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치가 탄생했다. 그 사잇길을 통과할 때마다 생각했다. 세상에 이렇게 조용한 환영도 있구나. 어느새 내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어쩐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


나우뉴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있었다. 바로 손잡이 없는 다리. 그렇다, 나는 겁쟁이다. 솔직히 높은 건 아닌데, 안전망 없는 다리를 건너본 적 없는 걸.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바로 떨어진다. 상상만 해도 다리가 후들후들거렸다.

“이 정도 높이에서는 추락해도 안 죽어!”


동생이 말했다. 열받지만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중간 지점에 잠시 멈추어 서서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푸른 소나무가 병풍처럼 줄지어 있고, 그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졸졸 흘렀다. 손바닥만 한 돌부터 어른도 누워서 쉴 수 있는 돌까지, 각양각색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중이다. 사진을 연신 찍었지만, 역시 보는 것만 못하다. 그림 도구가 있었다면 수채화 한 점을 뚝딱 완성해 버렸을 텐데.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두 눈에 담아야지.




통도사는 한국 3대 사찰 중 하나로,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때 대국통을 지낸 승려 중국에서 받은 사리를 여기에 봉안했다고 한다 (서기 646년) 하지만 진신사리 탑은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간 날에도 닫혀 있었다.


여행 인생에서 타이밍 맞추는 날이 오긴 올까.


대웅전 창문 너머로 볼 수 있긴 하지만, 이걸로는 성이 안 찬다. 그래봤자 유리 필터가 쓰인 셈이니까. 나는 아무 방해물 없이 알현하고 싶다.


아쉬운 마음에 적멸보궁 입구 앞에서 깡충 까치발을 들었다.


불교신문

오 마이 갓, 보기만 해도 성스럽다. 내 글솜씨로 묘사할 수 있을까. 다른 사찰에서 본 탑은 사람 한 명이 서 있기에도 좁은 너비였는데, 이 탑은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일단 10평 남짓한 사각형 바닥에 내 키만 한 높이의 암석이 있다. 바닥이 본체라면 그 위에 올라간 첫 번째 단은 절반 정도 크기. 그 위에 또 그 절반만 한 암석이 있고, 그 위에 작은 범종이 있다. 금강계단을 빙빙 돌면서 기도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저 멀리에서도 반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상상만 해도 갑자기 불심이 차오른다.


이번에는 빛바랜 법당 한 채가 시선을 끌었다. 주변을 보니 거의 다 비슷한 상태였다. 어떤 법당은 문틀이 뒤틀렸고, 어떤 법당은 문이 덜렁덜렁거렸다. 다른 사찰에서 열심히 때 빼고 광 낼 때 통도사는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안았나 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낡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한 겹 한 겹 쌓아온 수백 년의 무게에 압도되어 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조명이 따로 없다는 것. 햇살 하나면 충분했다. 이 빛 하나로 온 세상이 밝아진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구름이 지나갈 때는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보지 않아도 해가 어디 있는지 알겠다. 모든 게 통도사가 세워진 그 시절 그대로였다.




KTX 역에서 가까운 위치도 아닌데, 사람이 북적거리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다른 사찰이 낡은 옷을 버리고 꽃단장할 때 통도사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그렇다고 과거에 머물러 있기만 한 건 아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변화가 있다면 적극 추진했다. 뚜벅이를 위해서 산책로를 정비하고, 차주를 위해서 주차장을 증축하는 식이다.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그 와중에도 경내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것이 고유한 매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안 걸까. 아직도 오래된 법당 특유의 울림이 잊히지 않는다.


진신사리, 법당, 세월을 오롯이 품어낸 소나무.


이 모든 게 무상 (無常), 인내 (忍耐), 본질을 (本質) 보여주고 있었다. 삶도, 자연도 결국 흘러가지만,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유행. 그 안에서 갈피를 잃곤 했었는데, 통도사는 정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무조건 유행을 쫓아가기보다 나에게 필요한 변화와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힘, 이 뚝심이야말로 내 매력이자 본질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을 단단히 만들기 위해서 바꾸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통도사가 던진 질문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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