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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박물관

by 은손


이왕 온 거, 박물관이나 가보자


대원사 템플스테이 입실은 2시 30분인데, 일찍 도착했다. 점심도 먹었고, 차도 마셨는데, 아직도 시간이 남았군. 뭐, 어쩌겠어.


입구에 있는 티베트 박물관이 문득 떠올랐다. ‘사자의 서’ 책에서 본 티베트는 죽음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영적인 나라였다. 오늘 박물관에 간다면,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겠지.


박물관 계단 중앙에는 작은 탑이 하나 있었다. 중앙에는 사람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탑이란 단순하고 절제된 구조여야 한다고 믿었는데, 그건 오롯이 나만의 고정관념이었다.


입구 쪽에서는 천 조각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차크라인가 싶었지만, 보라색이 없었다. 스님께 여쭈었더니, 이건 룽따라고 불리는 기도 깃발이란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에 적힌 기도문이 세상에 퍼진다고 본다. 이 말을 듣자 가슴이 일렁였다. 마치 눈부신 햇살 아래, 티 없이 맑은 시냇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 문득 생각했다, 티베트 사람의 영혼은 정말이지 일급수처럼 맑고 투명할지도 모르겠다고.


안에 들어가자, 공양간에서 본 스님이 있었다.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맞으시죠? 그럼 무료예요. 편하게 보세요.” 딱히 인사를 나눈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을 기억하다니. 낯설기만 하던 공간이 불쑥 가깝게 느껴졌다.


1층에는 다양한 불상과 법구가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남녀의 두개골을 엮어서 만든 북이었다. 보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걸 사용했단 말이야?

박물관에서는 도대체 왜 가져왔을까?

왜 하필 이런 재료로 만든 걸까?


Unsplash

그야말로 물음표 투성이었다. 도록에는 내가 궁금해 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윤회를 믿는 티베트 사람들은 사후에 육신을 베푼다고 한다. 그렇게 고승의 유골은 법구로 다시 태어나고, 사람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죽음을 묵상한다.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도구 그 자체다. 처음에는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던 전시품이 성스럽게 보였다.


Pixabay

티베트 고승이 법구를 남기듯, 나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낯선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건 처음이었지만, 그 속에서 내 삶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여운이 진하게 남은 여행의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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