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베이징
소파사운즈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날, 베이징 팀에게 메시지가 왔다. — “야외 공연에 한국 뮤지션을 초청하고 싶은데, 혹시 추천할 만한 팀 있을까?” 해외 무대를 연결해 본 적은 있었지만, 야외는 처음이었다. ‘내 밴드의 해외 진출은 내가 책임진다’라고 주문처럼 외치던 말이 드디어 현실이 되는 걸까. 가슴이 뛰었다. 이번에는 꼭 현장에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친하게 지내던 몇 팀을 추천했고, 그중에서 프로젝트 임페어와 떠나기로 했다.
목표는 하나, 해외 음악신을 최대한 경험하기. 여행은 못해도 상관없었다. 대신 무대를 하나라도 더 세우고 싶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 공연장에 직접 연락했다. 놀랍게도 우리를 네 군데에서 초청해 주었다. 프로모터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출발 당일에 폭우가 쏟아졌다. 야외 공연도 당연히 취소됐다. 여태껏 쓴 돈이 얼마인데, 무대에 설 수 없다니. 밴드 멤버들에게 미안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남은 공연이 있으니,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렀다.
다행히 라이브 공연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낯선 관객들이 온몸을 흔들며 프로젝트 임페어에 환호했다. “음악 좋다. 다음에 오면 꼭 연락해. 한 번만 하기에 아쉽다.” 매니저의 칭찬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대가 끝나도,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현지 밴드들이 먼저 다가와 맥주를 사주었고, 미국인 뮤지션은 단골 식당에 데려가 주었다. 즉석 합주도 했다. 우리는 다 함께 베이징 덕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마음에 기억을 남겼다. 새로운 무대와 관객을 만나는 순간도 짜릿하지만, 현지 뮤지션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또 다른 차원의 짜릿함이었다. 언젠가 이 인연이 한국 무대까지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레이시아부터 서울, 부산까지
뮤지션 해외 진출을 만들어 보겠다는 목표는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남았다. 단순히 무대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 이렇게 연결된 사람들끼리 한 무대를 만들 순 없을까. 그즈음, 새로 안 프로모터에게 메시지가 왔다. — “말레이시아 밴드 배틀블룸이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는데, 자리 만들어줄 수 있어?”
그들의 음악을 듣자마자 밴드 만쥬한봉지 음악이 떠올랐다. 두 밴드가 함께 무대를 꾸미면, 서로의 매력이 비슷한 듯 달리 빛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의 도시에서 함께 공연하는 투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의 쇼핑몰, 부산 소파사운즈, 서울의 카페까지 — 엠티처럼 몰려다니며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무대가 아니었다. 쿠알라룸푸르 야시장에서 다 같이 맥주를 마셨을 때,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노래를 주고받던 장면, 그리고 한국 관객이 배틀블룸 노래의 후렴을 따라 부르던 순간까지.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내가 진짜 사랑한 것
나는 어느새 무대를 연결하는 기획자에서 함께 여행하는 동행자가 되어 있었다. 특히 공연 기획자로 살아보는 실험은 내 안의 욕망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 내가 사랑한 건 음악을 해외에 알리는 일이 아니었다. 취향이 맞는 사람을 연결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끝까지 해내는 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그 몰입이야말로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것도.
음악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건 다 했다.
그래서 그럴까, 더 이상 공연 기획에 대한 미련은 없다.
오히려 더 후련해졌다.
내 마음속에서 무대는 사라졌지만, 인생은 계속된다.
다음 여행은 나를 또 어떤 세계로 이끌까.
오늘도 또 다른 발견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