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밴드의 해외 진출은 내가 책임진다
홍대 클럽에서 인디 공연을 보던 시절, 내 마음속에 조용히 새긴 다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영국문화원에서 일하며, 한국 예술가들의 영국 진출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은 몇몇 분야에만 국한돼 있었다. 영국 무대를 꿈꾸는 밴드가 이렇게 많은데, 왜 인디 음악은 그 대상이 아닐까? 답답함 끝에 결심했다. 내가 직접 길을 만들자.
무대를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나의 공연 기획자 여정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 한국 음악을 해외에, 해외 음악을 한국에 소개하는 것.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내가 기꺼이 다리가 되어주고 싶었다. 최애의 해외 진출을 책임질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그간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일만 해왔다면, 음악을 통해서 세계가 연결되는 기쁨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나라에서도 좋아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순간이 자꾸만 궁금해졌다.
첫 번째 기회는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 세계 100여 개 도시에서 열리는 소규모 공연, 소파사운즈 (Songs from a room, Sofar Sounds) 기사를 본 것이다. 하지만 진행 중 도시 리스트 어디에도 서울이 없었다. 이건 기회였다.
당장 디렉터 레이프 오퍼에게 이메일을 썼다.
“나는 한국의 재스민입니다.
소파사운즈를 서울에서 열고 싶어요.
절차가 따로 있을까요?”
“구글밋에서 이야기 나눌까요?”
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 어떻게 말해야 나에게 서울 챕터를 맡겨줄까. 회사가 요청한 국제교류만 기획하던 나에게, 드디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써보며 수차례 연습했다. 나에게는 그 어떤 회사 면접보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파사운즈 기획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영상감독, 음향감독, 사진작가 등등의 멤버들이 필요했지만, 그 분야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디렉터 레이프 오퍼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보냈다 — ‘열심히 팀을 꾸리는 중이에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아무 진전이 없었지만, 이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했다. 나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가 한국에서 소파사운즈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파사운즈 서울이 첫 발을 내디뎠다. 내 야망이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 한국 뮤지션을 해외로, 해외 뮤지션을 서울로. 이 플랫폼이 그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다음 주에는 소파사운즈 2편을 연재합니다.
- 최애 밴드와 떠난 베이징 투어
-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찾아온 기회
- 결국 발견한 진짜 욕망
공연 기획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