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여행사 찾았어!
해변을 걷던 동생이 식당에 달려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는 길리 투어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 산책하고 있던 동생에게 여행사 직원이 말을 걸었단다.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 가려는 찰나, 그가 식당까지 직접 우리를 찾아왔다. 곱슬머리에 덥수룩한 턱수염, 미소를 지을 때마다 반짝거리는 금니, 게다가 사람을 홀리는 넉살까지 — 동생이 마음을 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괜찮겠다. 우리는 계약금까지 결제했고, 내일 아침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밤새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정말 배를 탈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가 보여준 바닷 속 세상
“굿모닝, 배 탈 준비됐어?”
그는 밝은 얼굴이었다.
“지금 비 많이 오는데 괜찮아요?”
“롬복에서 이 정도 비는 아무것도 아냐.
오늘 물고기랑 거북이 못 보면 전액 환불해 줄게.
됐지?”
그는 내 불안한 마음을 단번에 눌러 주었다. 역시 세일즈 고수답다. 그렇게 우리는 통통배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우리의 속도에 맞춰주겠다는 그가 고마울 뿐이었다.
트라왕간, 메노, 아이르 — 롬복 북서쪽에 떠 있는 세 길리 섬을 하루 종일 오가게 될 참이었다. 물놀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호흡이 문제였다.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연히 고글에 김이 서리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잠수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쉬었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나는 바다와 조금씩 친해졌다.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물고기, 세로로 꼿꼿이 서 있는 물고기, 돌 밑에서 조용히 잠자는 물고기까지 — 바닷속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야생 거북이가 깊은 바다로 미끄러지듯이 헤엄치는 모습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는 것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산호초는 바닷속 정원 같았다. 직접 촉감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무거나 만지면 위험할 수도 있단다. 가이드는 만져도 되는 산호초를 골라 주었다. 환상적이었다.
마지막 섬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기는 했지만, 해가 지기 전에 나와야 한다는 그의 말에 서둘러 채비를 했다. 아쉬운 마음을 딛고, 배 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겠어
“인스타그램 아이디 좀 알려줘.
친구 추가할게.
니 바다 사진도 궁금해.”
“어? 나는 인스타그램 가입도 안 했는데?”
영어도 잘하고, 센스가 좋으니, 조금만 노력해도 손님을 모아올 수 있을텐데. 가입도 안 했을 줄이야. 동생도 똑같이 생각했나 보다.
“넌 영어도 잘하고, 영상 편집도 하잖아. 온라인에 롬복 이야기 잘 알려봐봐. 손님을 몇 배 더 많이 모을 수 있을거야.” 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어차피 난 월급쟁이야.”
인터넷은 알아도, 그 파급력은 상상도 못 해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겠다. 그는 여전히 해변에서 손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알았어,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니 투어 홍보하는 포스팅
한 편 써볼게.”
결국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이 직접 해주겠다고 마무리했다.
그는 정말 고마워했다.
손님이 늘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길을 스스로 찾지 못했을 뿐.
숙소로 돌아오는 길, 그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어차피 월급쟁이라며 체념하던 모습, 사실은 손님을 늘리고 싶지만, 남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모습, 지금도 행복하지만 안정적인 월급이 나오는 군인이 되고 싶다는 얘기까지. 그런데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넌 뭘 해도 혼자 잘 벌어먹고 살 것 같아.”
“여행 작가 해도 되겠다.”
“음악 공연 기획해 보는 건 어때?”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조언들.
그때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소셜미디어를 운영할 능력이 충분히 있지만,
인스타그램 가입도 안 했던 롬복의 그 가이드처럼,
나 역시 기회를 흘려보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내 옆을 지나고 있는 기회는 무엇일까?
나는 그걸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아니,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다.
그를 보면서 왜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지 답답해했지만, 기회를 붙잡을 용기는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2025년이 되었다.
올해 초에 만났던 직장 선배가 말했다 — “여행 에세이를 꼭 써봐. 관점도 독특하고, 여행 얘기하는 거 진짜 좋아하잖아. 지금 안 쓰면 다 휘발돼.” 그날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세이는 써본 적 없다고, 내가 잘 쓸 리가 없다고.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롬복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게 기회일지도 몰라. 이번에는 뭐가 되었든 붙잡아 봐야지. 그 길로 브런치 목차를 만들고, 연재 일정을 설정했다. 이 여행의 끝이 성공적일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내가 정해놓은 한계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니까.
롬복에서의 시간 덕분에
마침내 한 걸음 더,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