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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었던 자유는 외국살이가 아닌 주도권

by 은손


디지털 노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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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업무를 하는 삶. 무엇이든지 내가 정하는 일상이라니, 디지털 노매드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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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에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발리 카페에서 일하는 개발자, 베트남 호찌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구매대행 사업가까지 — 디지털 노매드 직업의 범위는 상상한 것보다 넓었다. 문제는 그중에 끌리는 게 없었다는 것. 또 다른 옵션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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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서 고민만 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직접 만나서 물어보자. 그들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기술로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지. 그 길로, 디지털 노매드 성지로 불리는 치앙마이 비행기 표를 단숨에 예매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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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표는 디지털 노매드 만나보기. 매일 밤, 그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았다. 왓츠앱 메신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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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왓츠앱 밋업이었다. 저녁 일곱 시, 치앙마이의 한 식당에 모였다. 브라질, 미국, 스위스, 프랑스, 아이슬란드 — 저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시아 사람은 나뿐이지만, 어색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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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20대의 프랑스 청년 아담이었다. 그는 무엇이든 도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성매매 실태를 알리는 필름을 제작하고 있다. 영상 제작도, 연출도 배운 적이 없지만, 관심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꾸준히 문을 두드린다. 물론 그걸로는 수입이 없으니, 영어 강사도 병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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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스타일이라면, 피터는 전문성을 무기로 삼은 프리랜서 개발자였다. 미국의 인건비로 치앙마이에서 사니, 갈수록 부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있었다 — “태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면, 영원히 이방인 신세일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부터 태국어 과외를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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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간호사 마틴은 나처럼 디지털 노매드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치앙마이가 좋아서 일 년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이주는 망설이고 있었다.

“태국은 간호사 일당이 2000밧이더라고요 (한화 80,000원 상당) 현지 기준으론 나쁘지 않지만, 현재 연봉에는 한참 못 미치죠. 그래서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내년 초에는 들어오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목소리에 단단한 결심이 보이는 듯했다. 갑자기 옆 자리에 앉아 있었던 브루노가 끼어들었다 — “디지털 노매드가 되려면 온라인 비즈니스가 필수예요. 어떤 직업은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간호사처럼요.” 유료 앱 개발자다운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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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디지털 노매드의 삶은 선택의 문제처럼 보였다. 어디에 살아도 충분한 돈을 벌 능력이 있거나, 돈이 적어도 어디서든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만약 후자라면, 당장이라도 디지털 노매드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강사 직업도 구할 수 있을 테고, 하다못해 일용직이라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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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원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한국에 가고 싶을 때 비행기 표를 충분히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플 때 최고의 치료를 받고 싶다. 집도 안전한 동네에 구할테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경제적 풍요를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닮고 싶었던 사람은 피터였다. 아담의 삶은 처음에는 행복하겠지만, 이내 괴로움이 커질 것 같았다. 당장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야근을 하고, 주말에 쉬는 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가족이 치앙마이에 살고 있어도 쉬이 들어오지 못하는 마틴의 마음도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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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외국에 사는 기회가 아니었다. 경제적인 안정 속에서 내 하루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주도권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 꿈의 본질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결해야 할 질문은 하나 — 회사를 독립한 이후에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아직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치앙마이에서 마틴과 서로의 여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디지털 노매드를 좇던 여행은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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