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생각의 흐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나는 도무지 이해 못 하겠는데
동생이 나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다. 심장이 아프긴 했지만, ‘그래,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되뇌었다. 어디에서 헷갈렸는지 정확히 알겠고, 동생이 짜증이 난 이상 내가 하면 될 일이었다. 다만 다음에 또 부탁할 일이 생기면 조금 더 정리해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업무 대화는 여기에서 끝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적인 농담을 일삼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동생이 솔직히 말해준 덕분에 잘 해결된 셈이다. 무엇이 불편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고,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했으니까. 이 점이 회사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우리 회사의 평가는 익명이다. 누구나 의견을 남길 수 있지만, 나는 누구의 의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게다가 팀 리드는 피드백 일부만 전달해 준다. 그것도 내용과 말투를 한 번 걸러서 누군지 짐작할 수 없도록 만든 이후에야 말이다. 내가 받아볼 즈음에는 이미 맥락이 다 닳은 상태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했고, 그 점이 왜 불편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꾸면 좋겠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의견을 기대할 수 없다. 누가 쓴 내용인지 알 수 있다면 맥락을 짐작이라도 해보거나, 상대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익명 피드백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익명은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의견의 모음일 뿐이다. 일례로 나는 우리 팀 디자이너에게 일감을 건네줄 때마다 이렇게 물어보곤 했었다 — “이 내용은 이런 의도인데, 이해되세요?” 그녀는 그때마다 좋다고 대답했었다. 그랬던 사람이 팀 리드에게 내 기획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전한 모양이다. 차라리 이런 스타일로 전달해 달라고 말해주었다면, 나도 그다음 협업을 신경 써서 준비해 볼 텐데.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오히려 팀 리드의 입을 통해서 피드백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묻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었다. 어차피 내 앞에서는 괜찮다고 할 텐데, 무엇을 물을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디자이너와 진행한 프로젝트를 팀 리드가 가져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업무를 덜어 주려는 배려라고만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야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그녀가 나를 어려워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 짐작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협업은 개선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그녀는 나와의 협업이 어려운 이유를 나에게 말하지 않았고, 팀 리드는 기회를 주는 대신 직접 맡아버렸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리포트를 받을 때마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점심시간에 저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을까’ 같은 사소한 장면까지 다시 곱씹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불편함은 직접 말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상대에게 한 번이라도 말해본 사람만 의견을 남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오만일까. 아니면 익명 장치가 있어야 서로 피드백할 수 있다고 믿는 인사팀 문제일까.
나는 이렇게,
심리적 안전감이라는 단어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