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의 시험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즐겁게 해주는 그 이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와서도, 사회에 나와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 그 이름, 바로 시험이다. 그리고 참 시험기간만 되면, 어찌나 다른 모든 게 재밌어지던지 평소에 안 하던 청소만 해도 즐겁고 화장실 샴푸통 뒷면에 적힌 성분 표시도 재밌어졌다. 마치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공부만 정말 하기 싫었던 기억이 있다.
스웨덴에 놀러 온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러 온 만큼, 역시 나에게 뒤따라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 이름하야 시험이다. 스웨덴에서의 공부라고 생각을 하다 보면 보통 떠오르는 이미지가 그룹으로 과제를 하거나 토론을 하거나 하는 모습이 떠올랐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도 학교고, 공대고, 평가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과목을 공부하면 시험이 뒤따라온다. 몇 번 포스팅에서 시험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긴 했지만, 이번 기회에는 제대로 시험을 어떻게 보고 린셰핑 학교의 시스템은 어떻게 되며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한번 구체적으로 다뤄보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웨덴에서도 모든 과목이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니다. 아마 한국에서도 리포트로 대체하거나 발표 등으로 시험을 대체하는 과목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의 나는 공대를 다녀서 그런지, 운이 없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시험을 안 보는 과목을 들은 기억은 없다. 시험의 비중이 낮은 과목이 있긴 했어도 모든 과목이 시험을 보긴 했다.
스웨덴에서 여태까지의 경험으로는 아무래도 공대이다 보니 시험을 보는 과목이 더 다수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번 학기엔 총 6과목 중에 1과목이 프로젝트로 대체했고, 이번 학기엔 총 5과목 중 1과목이 프로젝트로 대체한다. 그러나,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나 같은 경우는 공대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다른 학과의 경우 아예 한 학기에 시험이 없는 경우도 많고, 한두 과목만 시험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럼 내 경험을 토대로 스웨덴, 린셰핑 대학에서의 평가방식을 알아보도록 하자.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ECTS라는 학점 시스템을 보통 이용한다. 그래서 린셰핑에서도 ECTS 시스템을 적용하여 평가를 한다. ECTS 기준으로 정상적으로 학업을 진행할 시에 1년에 60 credits 한 학기에 30 credits를 얻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이 기준이 특별히 제한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고, 수업을 더 많이 들으면 더 많은 credits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학생은 이 정도를 듣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정도의 기준이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지난 학기에 총 37.5 credits을 획득하였는데 30 credits은 내 Master programme의 수업들이고, 7.5 credits은 스웨덴어 수업을 추가로 수강해서 얻은 credits이다. 스웨덴어 수업을 제외하면 6 credits 수업을 총 5가지 를 들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 과목의 6 credits도 세부적으로 나뉘어서 부분적으로 credits을 따게 되어있다. 그래서 한 과목을 다 들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이수를 못한 부분이 있다면 6 credits 중 3 credits 혹은 4 credits 만 얻고 incomplete course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incomplete course여도 성적표를 출력할 시 credit을 포함할 수 있어서 만약 다른 수업을 들을 때 선수 조건이 몇 credit 이상 수강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있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3학점 과목이면 그중에 1학점만 얻는 다던지 2학점만 얻는다는 방식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린셰핑 대학에서는 평가가 완료되는 대로 LADOK이라는 시험과 성적을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에 업로드되어서 아래와 같이 메일로 결과가 온다. 그래서 과목 당 내가 어떤 부분을 이수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고 모든 항목을 이수할 경우 Course 전체를 이수했다고 메일로 오며, 학교 포탈 시스템을 통해 다시 확인이 가능하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시험 기간이 되면 학교 건물 게시판에 모든 과목의 시험 일정이 쭉 적힌 대자보가 붙어서 그걸로 시험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곤 했다. 당연히 홈페이지에도 게시가 되어서 시험 일정을 받아서 확인도 가능했다. 하지만 스웨덴 린셰핑 대학에서는 시험을 보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험 등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선 시험을 한 번만 보는 게 아니라 한번 Fail이 되면 재시험을 계속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험을 보는 사람이 한두 명밖에 없는 시험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정말 시험을 볼지 안 볼지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서 강의실을 잡기가 어려워 시험 등록이란 것을 먼저 하도록 한다. 그래서 등록한 사람의 수를 체크해서 학교가 강의실과 시간을 배정한다.
그래서 만약 이걸 모르고 시험 기간이 되면 자연스레 시험을 보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시험을 아예 볼 기회조차도 놓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학교에선 그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신입생들에게 아주 자세하게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
학교의 시험 안내 페이지에서는 이 등록제도를 설명하길 시험 강의실과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서는 시험 감독도 필요하고, 그에 따른 각종 준비를 하기 위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등록을 꼭 해서 비용의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점은 어떤 면에서 스웨덴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을 보면서 내가 겪었던 컬처 쇼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1) 시험 시간은 무조건 4시간!
한국에서 시험을 볼 때에는 시험에 따라서 시험 시간도 항상 달랐다. 시험이 성적에 끼치는 영향이 적어서 비중이 적거나 답안을 작성하는 시간을 중시하는 경우에 시험 시간이 굉장히 타이트했고, 다른 경우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경우도 있고 제각기 달랐다. 하지만 스웨덴 린셰핑에서의 시험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시험 시간은 4시간 고정이다. 특별한 경우는 일반적인 강의실을 배정하는 written exam 이 아니라 말하기 시험 혹은 그 과목의 개별 과제로 인한 교수가 개인적으로 보는 경우 정도이다. 그 외에는 4시간으로 고정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 시험시간이 4시간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는 사실 스웨덴이 학생들을 배려해서 시간에 쫓기는 것보다 정말 지식을 시험 보기 위함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재시험을 보거나 학생 수가 적은 시험들은 한 강의실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시험 시간을 일괄적으로 정해서 학생들의 시험 시간이 뒤죽박죽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2) 시험 볼 때에 음식 반입 허용!
이 것이 가장 놀란 부분인데, 시험 시간이 보통 4시간으로 길기 때문에 스웨덴 학생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음식을 지참해서 온다. 그렇다고 무슨 점심 도시락을 싸오는 정도는 아니고, 보통 바나나나 에너지바, 물 정도를 가져와서 시험 도중에 먹는다. 나는 생각하는 방향이 못돼서 그런지 저렇게 음식 같은 거 가져올 수 있다면 거기다가 만약 커닝 도구를 숨겨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그 정도로 학생들이 치밀하진 않은 것 같다.
3) 답안지에 이름을 기입하지 않는다!
답안지에 이름을 기입하면 채점하는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 관계가 성적에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인지 여기 린셰핑에서는 답안지에 이름을 기입하지 않는다. 그 대신 AID number라는 것을 기입하여 학생을 구분한다. 이 AID number는 마치 인터넷 사이트의 OTP (one time password)처럼 시험 볼 때에만 사용하도록 부여하는 임시 번호를 말한다.
시험을 볼 때에 학생증과 personnal number를 확인하여 AID number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교수 혹은 조교는 그 번호만을 토대로 성적을 채점하고 전산에 기록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나중에 채점이 끝나고 그 AID number와 나의 번호가 매치가 되어서 성적이 나에게 기입이 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교수와 학생 사이의 불필요한 의심 자체를 원천에 차단하는 것이다.
5) 소지품과 재킷은 모두 한 곳에!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몇 번인가 커닝을 해본 적이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신입생 때는 고3에서 대학생이 되었다는 그 해방감에 공부를 하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공부에 손을 아예 대지 않았다. 그러나 학점은 어느 정도 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서, 커닝을 해본 적이 있다. 뭐 보통은 책이나 프린트물을 가져가서 책상 밑 서랍에 넣고 몰래 본다던가 하는 방식 정도였다. (여담으로, 몇몇 학우들은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커닝을 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다. 혹시 방법이 궁금하다면 개인적으로 연락하시길.. 응?) 이 곳에서 시험을 볼 때에는 그런 커닝을 방지하고자 필기구와 학생증, 먹을 음식을 제외한 소지품을 교실 한 구석에 모아둔다. 조금 특이한 점은 가방뿐 아니라 외투도 반드시 벗어서 지정된 곳에 걸어놓아야 한다. 외투에 커닝 페이퍼를 넣을 수 있어서일까, 추운 날씨 때문일지 잘은 모르겠지만, 재킷도 반드시 걸어놓는 모습은 새롭게 느껴졌다.
6) 시험 감독은 지정된 스태프가!
보통 내가 한국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에는 교수와 조교들이 시험 감독을 보았다. 그러면서 문제에 이상한 점이 있거나 공지사항이 있을 때 알려주곤 했는데, 이 곳에선 교수나 조교들이 시험 감독까지 하기엔 인력 낭비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혹시나 모를 부정행위 때문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교수나 조교는 시험 감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학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시험 감독을 맡아서 하며 교수나 조교는 시험 중간에 들어와서 시험 문제에 대한 질문이나 잘 못된 점이 있는지 체크 정도만 할 뿐이다.
스웨덴은 내가 생각하기에 학생들이 시험 하나에 막 목숨을 걸면서 공부를 하진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은 아닌데, 예전에 내가 공부할 때 시험 하루 전에 핫식스를 먹어가며 밤을 새워서 공부하고 시험을 봤었는데, 그 정도로 시험을 중요하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여기 와서 처음 시험 볼 때는 예전 기억을 살리면서 열심히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해도 성적이 딱히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만약 시험을 망쳐도 재시험 기회가 여러 번 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몰아쳐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역시 공부는 평소에 하는 게 정석이지 벼락치기는 여러모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시험 일주일 전부터 벼락치기를 하겠지만, 아무튼 비슷한 점도 많으면서 다른 점도 많은 스웨덴에서의 시험이었다.
다음 포스팅은 스웨덴에서 마시는 술에 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스웨덴은 우리나라보다 술에 대한 규제가 강력해서 아무데서나 술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밤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고 싶으면 웬만해선 마실 방법 자체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새벽 2시에 해장국과 함께 3차 혹은 4차 이렇게 달리는 그림은 스웨덴에서 보기 어려운 그림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Vi ses nästa gå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