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석사 논문을 쓰다.
지겹고, 힘들고, 보람찼던 논문이 끝나다
내가 썼던 논문이라고 하면 작년 여름 학회용으로 썼던 간단한 소논문(Conference paper)을 제외하면 대학생 때 썼던 졸업 논문이 전부였다. 그때는 그나마 한국말로 쓰기도 했고, 말 그대로 졸업을 위해 쓴 논문일 뿐 제대로 출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엉성하기도 하고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인지 여기서 쓰는 석사 논문은 의미가 많이 남달랐다.
2월 즈음에 시작했던 논문 작업이 지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발표는 사실 11월 초에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논문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하는 데까지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다. 그래도 지금은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고, 그 기념으로 내가 경험한 논문 일정과 힘들었던 점, 그 결과 등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정상적으로 학교에서 배정한 석사 논문 기간은 한 학기, 정확히 말하면 20주 기간이다. 그래서 보통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작성한다고 하면 1월에 시작해서 6월쯤에 마무리하는 게 학교에서 정한 기준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시작할 때부터 조금 늦게 시작하기도 했지만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많은 기간이 소요되었다. 아래는 내가 계획던 일정과 실제 소요된 기간이다.
보면 알겠지만 계획했던 것보다 거진 2배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원래 2월에 논문을 시작했으므로 예상 완료 시기는 넉넉잡아 9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시작 시기가 늦었으므로 6월에 끝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방학 동안 일해서 9월에 딱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이 12월이다.
간단히 항목들을 설명하자면,
Studying: 실제 논문 작업을 들어가기에 앞서 미리 공부를 하는 작업. 그냥 논문을 시작하기에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므로 주제와 맞는 다른 사람의 논문이나 학술지 들을 읽어서 이해를 하고 내가 앞으로 어떤 작업을 진행할 지에 대한 공부를 한다. 추가로 Matlab 등의 툴을 이용해서 실제 작업 이전에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하는 작업도 진행하였다.
VHDL coding: 내 논문에 사용될 코드를 프로그래밍하는 작업이다. VHDL이라는 언어를 사용해서 코드를 짜고 내가 제대로 코드를 짠 것이 맞는지 실행을 시켜보고 확인해보고 하는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Synthesis work: Synthesis를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설명하자면 내가 만든 VHDL 코드를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실제 회로처럼 만드는 작업이다. 사실 이 과정에서 내가 만든 코드가 이상이 없다면 그냥 프로그램을 돌리고 결괏값을 얻으면 끝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만든 코드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문제가 없어도 결과가 이상하게 나올 수가 있다. 게다가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조건에 따른 결괏값도 더 얻어내려고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Documentation: 본격적으로 논문 작성 과정이다. 프로젝트를 끝내고, 현재까지 나온 결과를 취합해서 분석을 하고 제출할 최종 문서를 만드는 작업과 발표할 때 사용될 슬라이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힘들었던 점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프로젝트 작업에서 오는 힘든 점하고 문서 작성에서 오는 힘든 점이다.
먼저 프로젝트 작업에서는 일단 둘이서 진행했던 게 참 힘들었던 것 같다. 논문은 혼자서 작성을 많이 하지만 둘이서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주 팀플을 자주 했던 친구와 같이 논문을 작성하기로 했는데, 둘이서 하다 보니 서로 간에 트러블이 생길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이 친구가 똑똑하긴 하지만 프로그래밍을 조금 헤매다 보니 서로 간에 속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어서, 서로 간에 스트레스가 쌓였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양이 점점 늘어났고, 나중엔 거의 모든 작업을 내가 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많이 힘들었었다. (또, 여기서 말 못 할 수많은 문제가 있지만 소주 한잔 없이는 언급하기 힘드므로 궁금하면 개인적으로 연락 바란다. 하하)
그리고 문서 작업은 정말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이었는데, 영어로 전문적인 글을 쓰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먼저 제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형식이었는데, 형식이라는 것은 표나 이미지 삽입하는 방법, 캡션 다는 방법, 인용하는 방법 등 일정하게 맞춰진 규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이걸 처음에 몰라서 그냥 보기에 그럴듯하게 작성했는데 많은 지적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맞춤법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 시간에 배운 수많은 문법들로 인해서 나름 영어 문법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맞춤법 검사기에 나오는 간단한 문법 실수들은 Microsoft word 나 Grammarly 등을 이용해서 많이 잡아냈는데, 거기에 나오지 않은 많은 실수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몇몇 문장은 이게 맞는지 틀린 지 판단이 잘 안서 기도 했다. 최고 문제는 관사 a와 the의 문제였다. 난 아직도 이게 너무 헷갈린다. ㅠㅠ 논문이 한두 페이지도 아니고 60페이지 가까이 되다 보니 한 문장 한 문장 맞춤법 틀린 게 없는지 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졌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기술하는 내용이 정말 사실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최대한 기술을 했지만, 그 내용들이 레퍼런스들에 맞춰서 정말 제대로 기술되었는지, 애매한 부분에 대해 주관적인 해석이 포함된다던지 이런 점들이 많이 걸렸었다. 이럴 때는 수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면 공부도 다시 해야 하다 보니 문장 하나 쓸 때도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논문 발표는 보통 디펜스라고도 말하는데, 논문을 그저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논문에 대해 의문점이 있으면 본격적으로 질문을 받아서 그것을 다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학교, 우리 학과의 논문 발표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더 프리 하게 이루어졌다. 어떤 학과는 석사 논문일지라도 큰 강당에서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많이 참석해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는 작은 강의실에서 보통 연관된 교수님과 조교, 그리고 관심 있는 학생들 몇몇이 참석해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다 보니 좀 더 부담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긴장은 많이 되었으나,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내가 공부한 것을 알려준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했고 발표를 했다.
발표를 준비할 때 한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게 있는데, 바로 Opponents를 구하는 것이다. Opponents는 논문 발표 후 논문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인데, 다시 말해 논문 발표자를 공격하는 역할이다. 이 역할도 굉장히 중요하기에 석사 졸업을 위해서는 본인 논문의 발표뿐 아니라 반드시 한 번의 다른 사람 발표 Opposition을 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논문에 대한 Opposition을 할 때는 발표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서 혹시 해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구하면 되지만, 내 논문의 Opponents를 구하는 건 평소 사교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꽤 곤란을 겪을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같은 사무실에서 논문을 쓰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쉽게 구할 수 있긴 했다.
그리고 발표는 20~25분 정도 소요되고 10~15 분 정도의 질문 타임을 가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시간이 생각보다 정말 짧은데, 아무래도 6개월 이상 준비한 논문을 25분 내로 다 말해야 하니 정말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처음 슬라이드를 만들 때 해야만 했던 일은 자세한 내용을 빼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논문 주제와 결론에 필요한 내용만 추리고 대부분의 내용을 뺀 것 같다.
본격적인 발표날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지만, 발표 자체는 문제없이 완료되었다. 역시 문제는 질문을 받을 때였는데, 대부분 예상했던 질문들이 나와서 대답을 잘했지만, 한 두 개의 질문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라 얼버무리기도 못하고 거의 얼어붙기도 했다. 결국 우리 지도교수님이 도와주셔서 넘어갔긴 했지만, 너무 당황하기도 하고 대답을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했다.
논문 작업이 끝나도 남아있는 일이 몇 가지 더 있다. 일단 먼저 Reflection document를 작성해야 한다. 이건 일종의 자기 평가 문서로 논문 활동을 하면서 어떤 것을 배웠고,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아쉬운 점은 어떤 것이었는지 예상했던 것과 어떤 점이 달랐는지 등등에 대한 문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이 것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출판을 해야 하는데, 본인 논문의 저작권 관련된 서류에 서명을 하고, 학교 데이터 베이스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완료가 된다. 그러면 인터넷으로 (구글에서) 검색해서 모든 이가 해당 논문을 다운로드하고 열람이 가능하다. 혹시, 만약에, 내 논문이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도록 하자.
http://urn.kb.se/resolve?urn=urn:nbn:se:liu:diva-153435
업로드가 끝난 뒤에는 사실상 논문 활동이 완료된 것이고, 내가 쓰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작업했던 파일을 나중에 또 사용할 수 있도록 교수님과 공유해 놓은 뒤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길고 긴 논문이 완료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현재 나는 모든 학업을 끝내서 석사 학위증을 기다리고 있다. 신청은 해놨는데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1월 중순에나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제 슬슬 다음 진로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은 석사 과정으로 온 학생들은 스웨덴에서 직장을 찾기 위해 6개월의 추가 거주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나도 일단 그 거주허가를 신청 해 놓은 상태이고, 최소한 6개월은 더 스웨덴에 있을 계획이다.
사실 내가 쓴 논문이 paper로 발표도 되고, journal에도 제출을 해보려고 하는 상황이어서, 여기에서 박사과정 phD를 하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하지만 결정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지금 진행 상황을 언급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 (아, 생각해보니 이게 언급을 한거네 ㅋㅋ) 만약 확정이 된다면 그 때 다시 글을 쓸 예정이다.
다음 글은 스웨덴에서 면접을 본 후기에 대해서 작성해보려고 한다. 결과는 사실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한국의 면접과 어떤 점이 달랐는지 나의 경험을 공유해보고 싶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