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언드래곤 Oct 29. 2019

학술논문을 쓰다

박사생이 하는 일

때는 10월 초, 내가 한창 조교일, 과학과 기술의 방법론, 고등교육에서 선생님 되기라는 강의들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내 지도교수님이 내 사무실로 방문하셨다.


교수님 : 이번에 학회가 있는데, 지금 연구하고 있는 게 뭐가 있지?


어... 글쎄요...


교수님 : 학회 논문(Conference paper) 제출기한이 아마 10월 말일 텐데, 한번 확인해볼래?

나 : 10월 말이요???

교수님 : 응, 구글에 한번 검색해봐

나 : 10월 22일이네요. 저 근데 요즘 이것저것 하느라 논문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

교수님 : 음 저번에 연구하던 거 있지? 그걸 ~~~~ 해서 ~~~~ 하면 ~~~~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 만들어놓은 코드 있지?

나 : 어... 네...

교수님 : 나도 수업이랑 다른 학회도 있어서 많이 봐줄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한번 해보자

나 : 아... 네...


그렇게, 논문 작성 벼락치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저녁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여태까지 조교일에 신경을 쓰느라 정말로 연구활동을 거의 접다시피 했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박사생의 근본은 연구활동이고, 꾸준히 연구를 해왔어야 했다. 정신없다는 핑계는 정말 핑계일 뿐, 학회 일정에 닥쳐서 준비하려고 하니 그야말로 시험 전날에 하는 벼락치기의 느낌이었다.


그래도 아무튼 칼을 뽑아 들었으니 뭐라도 썰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교수님의 가이드라인대로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물론, 도중에 조교 일과 수업 과제와 세미나 등은 내 개인을 절때 배려해주지 않으므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 결과, 나는 스웨덴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균 근무시간이 오전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로 바뀌었다. 사실 그 누구도 오래 남아있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문 작업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하면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이 잘 알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밤늦게까지 있게 되었다.


아 참고로 학술논문 (Conference paper)가 무엇인지 잠깐 설명해보고자 한다.


사실 '학술논문'이라는 단어는 나도 이번에 검색해서 적절한 한국말이 뭘까 하다가 찾은 것이고, 확실하게 한국말로 어떻게 구분되는지 잘 모르겠다. (난 한국 박사생이 아니기에...) 그래서 내가 아는 바대로 설명을 하자면 박사과정에서 쓰는 논문은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다. Conference paper, Journal paper, 그리고 Dissertation(Thesis)이다.


Conference paper는 학회에 제출하는 논문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주최하는 학회에 정해진 분량 내로(3~4 pages) 작성된 논문이다. 학회마다 제출 기한이 있고, 심사가 있으며 통과가 된다면 해당 학회지에 게시가 되고 실제 학회가 진행되는 날에 발표를 하게 된다.


Journal paper는 Journal에 실리는 논문이다. 흔히 말하는 네이쳐지 같은 게 그 예시이다. Journal paper는 일반적으로 분량이 좀 더 자유롭고, 일정도 조금 자유롭게 제시해주며, 흔히 학회에서는 제출한 paper가  Accept/Decline으로 결정이 되는 반면에 저널은 리뷰어들이 수차례 리뷰를 하며 질문을 하거나 수정을 요청하여 완성도를 높인다. 그래서 위의 conference paper 보다 훨씬 수준이 높고, paper 자체로써의 완성도가 높다.


Dissertation(Thesis) 은 학위논문, 혹은 졸업논문을 말하며,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작성되는 논문을 뜻한다. 당연히, 여태까지 연구한 것을 총망라하는 수준의 논문이니 수십 페이지에 달하고 보다 깊고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Defense를 통해 석사과정 혹은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Conference paper < Journal paper < Dissertation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말이다. (물론, 학교마다 개인마다 전공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썼던 것은 논문 3 천왕중에 최약체인 학술논문이다.


다시 논문 작성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이렇게 멍청한가. 나는 박사과정을 진행할 자격이 있는 사람 인가하는 우울한 생각이 계속 들기 시작했다. 멍청한 실수를 자꾸 하고, 교수님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진행을 못해서 그냥 업혀가는 느낌이 드니 내가 지금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도 들었다. 특히 밤 11시까지 낑낑대고도 결괏값이 잘 안 나오거나, 간단한 코드 실수를 고치기 위해 몇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더더욱 우울해졌다.

레드불로 버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더구나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먹을 게 없을 때, 외로움도 밀려왔다. 여기서는 11시가 넘고, 냉장고가 비어있으면 정말 저녁을 해결할 수단이 아예 없다. 마트도 식당도 문을 다 닫아버리니... ㅠㅠ 애초에 맨날 11시 넘어서 오면 장을 볼 시간조차 없다. 이게 유학생활의 어려움 아닐까? 서러움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지도교수님은 똑똑하고 착하신 분이라 본인이 바쁜 와중에도 항상 나를 지켜봐 주고 도와주었고,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옆에서 잘 봐주셨다. 물론, 항상 칼퇴를 하셨다. 그 덕분에 내용의 완성도야 어쨌든, 한 편의 논문이 기한 내로 완성이 되었고, 내 이름을 제1 저자로 한 논문 제출을 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이 통과된다면, 내 이름이 적힌 3번째 논문이 될 것이고, 안된다면... 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그래도 논문 작성은 박사과정의 꽃이라고 생각하고, 끝내는 순간의 희열과 내 손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박사과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었고, 이 논문을 쓰고 난 뒤에 교수님이 내가 연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추후의 저널이나 다른 논문을 포함해 아예 내 졸업논문 수준의 내용까지 쓸 수 있을 정도의 방향을... (쉴 틈은 없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제 밤 11시까지 학교에 남아서 연구를 하진 않겠지만 조금 나태해졌던 나를 다잡는 기회가 되었다.


학위를 따는 그날까지 열심히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조교가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