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아도 외국인 조교는 싫을 거 같아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글을 자주 써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여유가 생기지 않아, 브런치의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주말을 맞이하여 내 게임 캐릭터의 레벨링을 잠시 멈추고 글을 써보고자 한다.
최근 나의 박사 생활은 Lab assistant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실 일 자체는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이 아니지만,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추가로 듣는 수업도 있어서 정신이 없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또 다음 달에 새로운 Lab 이 시작하면 멘붕에 빠질 것 같다. 그래서 그 Lab 이 시작하기 전에, 내가 멘붕에 다시 빠지기 전에 내 근황을 전하고 스웨덴에서의 조교일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스웨덴에서 하는 랩은 한국에서의 실험 수업(?) 같은 것들과 의미가 통하면서도 굉장히 다르다. 요즘 학교에서는 어떻게 실험 수업을 진행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졸업한 지가 오래되어서...) 내 경험에 따르면 스웨덴의 랩은 정말 달랐다.
예전에 처음 스웨덴 석사를 시작할 때에도 글을 쓰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실험 수업이 있을 때에는 매뉴얼이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이 되어있고, 조교의 지시에 따라 순서대로 같이 진행을 하고 결과 값을 받아 적었던 기억뿐이 없었다. 또 대부분의 실험 수업이 시간이 넉넉해서 보통은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끝내고 하교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랩은 조교가 일일이 지시를 해주지 않는다. 수업 때 랩 매뉴얼을 나누어주고 알아서 해라 식의 랩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모르는 점을 조교에게 개인적으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간 내에 못하는 경우가 많고 추가로 개인이 남는 시간을 더 투자하여 패스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조교의 역할이 굉장히 모호해지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질문하는 것을 받아줘야 하니 어떨 땐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학생들이 알아서 하고 검사만 해주면 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정말 기초적인 일부터 알려줘야 할 수도 있다. 그 와중에 학생들의 실력차도 있다 보니, 뛰어난 학생들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아무도 조교의 역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와 같이 들린다. 하하
내가 맡은 랩은 이번 학기에 총 4과목이다. 그중에 첫 번째 Period에 진행하는 과목은 3가지였는데, 한 과목은 스케줄 상 조금 문제가 있어서 조교로 들어가진 못하고 매뉴얼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등 간접적인 활동을 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교로 들어간 수업은 2과목으로 하나는 Digitalteknik이라는 스웨덴 전자과 새내기들을 위한 실습수업과 하나는 Design of Digital Systems라는 석사과정 학생들을 위한 실습수업 하나였다. 후자의 석사생들 수업은 나도 이 곳에 제일 처음 왔을 때 들었던 수업이고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과목이라 브런치에 글도 적었었다.
https://brunch.co.kr/@fedragon5/11
두 가지 수업이 정말 큰 차이가 있었고, 느낀 점이 많아서 나누어서 조금 자세하고 솔직한 경험담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이 수업은 일단 학부생을 위한 수업이다 보니, 모든 학생들이 스웨덴 학생들이다. 그리고 랩 매뉴얼 조차도 스웨덴어로만 적혀 있다. 거기다 난 들어본 적도 없는 수업이라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러나 내 지도교수님은 그 과목은 정말 기초적인 과목이라 하루 이틀 전에 매뉴얼 한번 쭉 읽고 가면 될 거라고 나에게 말해주긴 했다.
뭐...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 같다. 내용이 기초과목인 건 맞고, 수업 내용을 쭉 읽어본 결과 내가 모르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전자과 학생들이라면 논리회로 수업이라고 말하면 아마 다 알 것이다. NAND gate 니 NOR 게이트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들... 그걸 이용해서 회로를 구성해보고 결괏값을 관찰하는 것이 실습의 주된 내용이다. 문제는 뭐 역시나 스웨덴어로 모두 적혀 있다는 점과 사용하는 기구들이 완전 처음 보는 것들이라는 것뿐이다.
내가 예전에 비슷한 실습을 할 때에는 일명 빵판이라고 불리는 Bread board에 기기들을 꼽아서 실습을 진행했는데, 여기선 빵판보다 더 편하고 직관적이게 모든 기기들이 모듈로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땐 좀 당황했지만, 기본적인 원리 자체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어서 Lab 시간이 오기 전에 혼자서 몇 가지 테스트만 해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듈로 되어있으니 케이블 연결만 조금 신경 써서 하면 딱히 어려운 것도 없고, 애들이 문제를 일으킬 점도 적다고 생각했다.
(라떼는 말이야... 빵판 구멍에 하나하나 꼽고 그랬단 말이야)
그렇게 이제 실제 Lab 타임이 왔고, 나는 다른 스웨덴 박사생과 같이 조교로 참석하여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스웨덴어를 못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정말 많았다. 먼저, 학생들이 아무래도 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진행하는 실습이기에 이것저것 설명을 해줘야 했는데, 그걸 내가 영어로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스웨덴어로 하는 게 편하고 선호하다 보니 같이 들어간 박사생 위주로 실습이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아무리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를 잘한다고는 하나 모두가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격이 내성적인 친구들은 말하는 것을 좀 두려워(?)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질문이 있어도 나한테 하기보다는 같이 들어간 스웨덴 친구에게 질문이 가기 일수였고, 나하고는 기초적인 질문이나 짧은 대화만 오가는 것 때문에 많이 소외당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실습수업 자체는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친구들은 아주 기초적인 실수를 해서 내가 해결 못하는 상황은 별로 없었고, 실습 자체도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보니 업무는 과제를 완료한 친구들을 검사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보통 이거 고장 난 거 같아요!라고 해서 가보면 연결을 잘 못했거나 회로를 잘 못 이해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진짜 고장 났어요 해서 기구가 고장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처음엔 솔직히 나도 실수를 좀 했는데, 회로가 동작을 안 해서 나도 끙끙대다가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싶었는데, 아주 간단한 연결을 안 해놓아서 생긴 문제였다. 하하... 그 이후론 학생들이 오히려 기본적인 실수를 많이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아서 잘 해결하긴 했다. 이게 경험이라는 것이겠지.
처음 경험을 해보고 나니, 뭔가 이 수업은 자신감도 붙고, 나와 10살 넘게 차이나는 애들을 가르치는 것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중간에 화장실 갔다 와도 돼요?라고 물어보는 친구를 보니 참 귀여웠다. 아마 1년만 지나도 화장실이 아니라 집을 갔다 오겠지. 아니 집을 갔다 안 오겠지.
(실습 pass를 해줄 때, 학생들의 personal number를 보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생년월일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99~01 년생이었다.)
이 수업은 앞에서 링크를 걸었지만, 내가 스웨덴 석사를 시작하고 처음 들은 과목이기도 하고,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던 과목이었다. 과목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그룹의 문제였지만 서도... 그래서 뭔가 기억에 더 남는 과목이기도 했다. 힘들게 진행한 만큼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기도 했고
그래서 처음 조교로 들어가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걱정은 아무래도 난 당시에 패스하는데 집중을 했기에, 내가 직접 하는 건 괜찮지만 과연 다른 학생들을 알려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고, 설렘은 내가 그 당시에 정말 고생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기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새로운 친구들을 보게 되는 설렘이 있었다.
이 수업 역시 나 혼자 들어가진 않았고, 교수님과 같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혼자 들어가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원래 조교가 일괄적으로 담당하기도 한다.)
처음 수업 들어가기 전에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다시 한번 매뉴얼을 정독하고 한번 더 실습을 진행해보고 들어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히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나는 사실 기본적인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스킵하고 지나갔었는데, 학생들이 그거에 대해 질문을 하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못하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매뉴얼에 나온 내용이기에 내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데, 해결을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학생 입장에서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 까 라는 생각부터... 결국 교수님께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서 교수님은 또 얼마나 실망했을까 라는 생각이 오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좀 더 꼼꼼히 매뉴얼을 읽어볼 걸 이란 후회가 되는 과정이었다. ㅠㅠ
그리고 인종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스웨덴 학생들에 비해서 Lab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는 게, 스웨덴 학생들은 이미 이 학교에서 여러 가지 Lab을 진행한 경험이 있기에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만 전세게에서 오는 학생들은 난생처음 보는 시스템에 당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고. 특히, Linux가 생소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터내셔널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들은 보통 기초적인 경우가 많았고, 원론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스웨덴 학생들이 문제가 생겨 질문을 할 때에는 정말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많았다. 그러면 결국 나는 교수님께 물어봐야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스웨덴 친구들은 나에게 질문을 안 하기 시작했다. 휴... ㅠㅠ
그 친구들 입장에선 교수님이 훨씬 문제 해결을 쉽고 빠르게 해 주고 잘 안 되는 영어보다 스웨덴어로 정확하게 질문 답변을 받으니 훨씬 편했으리라 이해는 간다. 나는 무시받는 것 같아서 속이 정말 쓰렸지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실습을 진행하는데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외국인 조교가 들어온다면 아마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결국엔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약간 반반으로 갈려서 스웨덴 학생들은 교수님이 맡고, 나머지는 내가 맡는 식이 되어버렸다. (씁쓸하지만...)
조교가 되어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는 것도 많았다. 정말 다양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보이다 보니,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 어떤 학생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라고 나에게 물어보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뭐 심정은 이해가지만, 딱히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강의 노트를 보고 책을 보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 다정하게 내가 많이 도와줄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할걸 그랬다. 그리고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 패스를 못해서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 패스를 하긴 했다.)
완성된 코드를 보니 누가 봐도 베낀 게 딱 티가 나는 (변수명 정도는 바꿔야 하지 않겠니... 나도 과제 베낄 때 이름은 바꿔서 썼어...) 애들도 있고, 길을 잘 못 들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도전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전부다 잘했는데, 한 두 군데 오류가 있어서 내가 찾아내어 완성했을 때는 마치 같이 과제를 완료한 것처럼 기쁠 때도 있었다.
힘든 점은 역시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인종 차별을 당한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스웨덴어를 할 줄 모르고, 영어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의사소통에서 힘든 점이 생기기 마련이라서 가끔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간단한 스웨덴어는 어느 정도 알아듣긴 하지만 내가 스웨덴어로 말하는 것은 아직 벽이 너무 높다. 스웨덴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퇴근하고 나서 집에 오면 밥 먹고 쉴 생각밖에 안 나서 큰일이다. 예전에 9시 10시까지 한국 회사에서 근무할 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하하하 (아 그때는 요리를 안 하긴 했지...)
놀고먹는 게 제일 좋은 나는 열심히 사는 게 쉽지 않다아아아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