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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을 배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내 목소리로 만든 녹음 파일 듣기였다. 텍스트를 녹음한 파일에는 내 목소리와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다. 내 목소리와 텍스트는 물과 기름처럼 이야기보다 목소리가 둥 떠 있는 듯했다. 마치 앵무새가 흉내를 내는 듯한 따라 하기와 예쁜 목소리가 낭독이라는 소리 내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방송반과 연극을 한 경험이 있다. 교실에서 책을 읽고 교내 방송을 할 때는 듣기 좋은 소리라고 들었다. 무대에서 연극을 할 때는 작은 목소리를 크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소리를 크게 전달하기 위한 길들여진 화법에는 굳어버린 조가 많았다. 말소리에 구겨진 부분을 다리미로 쫙 펼 수 있다면 쉬울 텐데, 좋은 소리 만들기가 참 어려웠다. 신체기관을 통한 소리의 생성과정을 인지하고 발음을 공부했다. 긴장과 이완이 잘 배합된 발성을 익히기 위해 바른 자세 유지에 힘썼다. 낭독은 제대로 듣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녹음 파일 만들기에만 힘쓰다 보니 텍스트를 보면서 검토하는 부분을 많이 놓쳤다. 책을 눈으로 초 독하고 다시 소리 내어 녹음한다.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며 텍스트를 보고 오독과 강조점을 찾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내 귀에 익숙한 소리 찾기와 텍스트가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를 구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 새롭게 시작되는 낭독공부는 연습하고 녹음 파일을 만들지만 목마른 갈증처럼 아쉬웠다.
낭독은 제대로 듣고, 말하고, 다양한 읽기와 쓰기가 된다. 책은 다양한 레시피를 갖고 있다. 문장은 입안에서 꺼끌 꺼끌 돋아나기도 하고 소화가 안될 때도 있다. 낭독은 쌀이 되어 씻고 조리하고 밥상을 차릴 때까지 나를 붙잡는다. 이렇게 낭독을 하면서 책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마음도 말랑말랑해져 갔다. 나에게 책은 가까웠던 시간도 있고 책과 아주 멀리 있었던 시간도 있었다. 다시 책을 통해 자유를 느끼고 낭독으로 마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은 좋은 양식과 간접경험을 얻을 수 있는 넓은 바다다. 파도를 타는 서퍼처럼 이야기의 맥락을 타고 유영하며 사유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내 소리를 듣는 첫 번째 청자는 나이기에 경청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기분과 감정에 따라 듣기도 다양한 음색이 된다. 고요하고 편안한 경청이야말로 다른 청자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기본자세임을 깨닫게 되었다. 일상에서 보고 들은 사물의 이름과 문장의 음가와 음절을 살려 소리 내어 보고 의미를 되새긴다. 마치 엄마에게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 같다. 책 읽는 과정은 숨이 멈추는 그 시간까지일 것 같다. 낭독하면서 텍스트를 입으로만 읽을 때가 많았다. 진정성 있는 말하기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도 나와 직면할 때 나를 돌아보는 순간이 가장 어려웠다. 내가 나를 외면하고 모른 척 버린 감정들이 세포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낭독은 나를 돌아보게 해 주었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디오북으로 청자의 귀에 작가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말 하기를 배우는 시간은 참 오묘한 시간이다.
사람의 신체기관중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것이 청각기관이라고 한다. 수정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겨우 0.9mm 정도의 크기에 불과할 때 이미 초보적 수준의 청력이 형성된다고 한다. 달팽이관은 4개월 반 만에 완전한 크기로 성장하고 달팽이관은 수정 후 불과 135일 만에 다 자라는데 실제로 4, 5개월 된 태아는 소리와 음악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5~6주 정도 지나면 들을 수 있다. 신체 기관이 다 만들어지지 않아도 심장은 자율신경으로 움직인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가족의 목소리부터 환경에 따른 분위기를 귀로 듣고 알고 태어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겪고 세상에 나온다고 생각하니 듣기의 중요성과 소중한 것들이 더 많아졌다. 가끔 기분이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있을 때 소리에 기분전환이 되는 경험이 있다. 가족의 목소리, 자연이 주는 소리, 음악에서 위안을 받았다. 또한 소음에 의한 기분과 감정에 변화를 알아채기도 한다.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소리의 기반이 듣기가 되고 말하기가 이루어지는 경로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나는 책을 읽고 내 목소리로 오디오북을 만드는 과정에 통과의례가 생겼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리는 순간이다. 이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린다. 소리 내어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시원함과 상쾌함이다. 머릿속이 명료해지고 몸은 가벼워진다. 이렇게 텍스트가 내 몸을 관통하는 통과의례를 치르고 나면 가슴에서 소리가 나온다. 내 몸을 통과한 소리는 맑고 편안하다. 호흡을 싣고 나온 소리는 듣기 편안하고 풍성하다.
낭독가 되면서 낭독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첫째 텍스트 이해와 폭이다. 둘째 작가의 의도에 따른 말하기를 할 수 있다. 셋째 목소리로 다양한 플램폼을 창조할 수 있다. 낭독은 나와 타인을 가르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놀이과정이다. 작가가 쓴 글이 마치 내가 쓴 글인양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다. 작가의 글을 경험하는 것은 단어 세계로의 매혹적인 여행이다. 첫 문장부터 작가의 목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청자의 귀를 사로잡는다. 이야기 속 다른 시간, 장소, 관점으로 이동하면서 캐릭터와 동반자가 되어 생생한 정신적 그림을 그려 주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작가의 상상력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줄거리의 우여곡절이 계속 몰입하게 된다. 청자가 경험한 신념에 공감하여 생각과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대화와 같은 대화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를수록 감정이 고조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강력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작가의 글은 언어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더 깊은 감상을 제공하여 내면의 세계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풍요로운 삶으로 안내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이해의 무한한 영역으로 가는 관문이 되기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작가의 생각을 내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는 낭독가가 되면서 내가 녹음한 파일을 듣고 잠을 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기 전에 들으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