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을 하면서 외부로 뻗어 있던 안테나가 안으로 향하게 되었다. 21살에 첫 아이를 낳고 그 뒤로 둘을 더 낳았다. 세 아이의 워킹맘으로 살아왔던 30년의 생활은 다소 분주하고 복잡하기까지 했다. 세 아이는 모두 건강하고 밝게 잘 성장하여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2020년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한쪽을 제거하고 달라진 목소리에 놀라 목소리에 소중함을 깨닫고 낭독을 하게 되었다. 암세포 제거 후 내가 살아온 삶을 포괄적으로 보게 되었다. 살아 있다는 감사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더 많은 생각이 옮겨졌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으로 들썩이던 때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문화가 생겨났다. 각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상경'한 것이 아닌 안방에서 줌으로 만나는 관계 맺기로 낭독은 또 다른 연대를 만들어 주었다. 안방에서 전문성우에게 가성비 높은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낭독을 좋아하는 낭독지기와의 인연이다. 도반들의 연령대는 30대~70대까지다. 가정주부이며 직장을 갖고 있는 커리어들이다.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 본 경험이 있는 분은 이해할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마음결이 비슷한 만남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 공감대가 이루어진 첫 수업은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그날은 낭독학교에 입학한 날이었다.
우리의 낭독은 <나에게, 낭독> 교재로 시작했다. 서혜정성우님과 송정희성우님이 전국을 다니면서 낭독강의와 사례를 에세이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초보를 위한 발성과 발음 공부법, 낭독하기 좋은 소설이나 시 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전문가 과정을 마치기까지 다양한 장르별 텍스트를 경험해 보고 오디오북 만들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다. 북내레이터 졸업작품으로 마르크 로제 장편소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의 챕터를 나누어 녹음파일을 만들어 우리들만의 오디오북을 만들었다. 소설 속 로제는 책을 싫어하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피키에씨를 만나 낭독가가 되어가는 여정을 그려진 소설이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 이야기 속 그레구아르처럼 나는 매일 새벽 5시 20분 줌에서 새벽낭독을 하고 있다. 눈 뜨자마자 소리 내어 책을 읽고 마음에 온 문자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이루고 있다. 같은 텍스트로 각기 다른 이해와 해석은 개성을 존중하는 또 다른 낭독독서 방법이다. 생각의 차이는 환기가 되고 접촉점이 되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 보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전문가반을 수료한 낭독가들은 매월 한 달 살이 낭독회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 낭독 파일을 공유해 듣고 피드백을 하고 있다. 북내레이터가 된 낭독가들은 각자 오디오북을 만들면서 정기적인 낭독회에 참여하여 좋은 낭독을 지향하고 있다. 책을 통한 연대는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 자연스레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챙기며 낭독가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소리는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우리 북내레이터는 오디오북을 본인이 직접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집에서 홈 리코딩으로 오디오북을 완성하기까지 훈련을 하고 있다. 나는 기계를 잘 모르기에 홈 리코딩 시설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디고 어려웠다. 줌이라는 화면도 낯설었지만 홈 리코딩이라는 시설은 더욱 생소했다.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도반들과 챙기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리는 먼저 알게 된 정보를 공유하고 배우는 과정이 잘 진행되어 홈 리코딩을 집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출판사에 제출할 오디오북 파일 상품이었다. 홈 리코딩 시 녹음 품질 완성도가 어디까지 인지 그 감을 찾기도 매우 힘들었다. 연습생끼리 듣는 파일은 무리가 없으나 청자가 들을 수 있는 파일은 만드는 과정에 공이 만이 든다. 녹음하는 장소가 집이다 보니 생활 소음과 낮시간에 발생하는 환경소음이 많다. 이동하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과 소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취약한 녹음 환경은 스트레스로 낭독의 흥미를 사그라들게 했다. 맥이 풀린 나는 더운 여름을 핑계로 녹음을 쉬었다. 낭독은 쉼에 여정인 것 같다. 몇 달 쉬고 나니 낭독이 궁금해졌다. 불편한 감정도 사라지고 평소처럼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목컨디션과 녹음하기 좋은 시간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낭독은 혼자 하는 것이다. 연습부터 완성까지 혼자 하는 마라톤 같다. 낭독을 하면 평소보다 내 몸과 마음을 더 깊이 살피게 되고 보살피게 된다.
얼마 전 초창기 멤버 도반들과 울산에서 초심낭독회를 했다. <나에게, 낭독> 교재를 가지고 기초반 때 만들었던 녹음 부분으로 초심낭독회를 가졌다. 졸업 후 우리의 모습은 다소 변해 있었다. 본업을 하면서 유튜버, 북내레이터, 낭독가의 모습은 더 활동적으로 보였다. 낭독 또한 처음과 다른 모습이었다. 낭독과 혼연일체가 되어 소리에는 각기 고유의 개성과 특성이 드러나 듣기에도 좋았고 편안했다. 초창기 어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포즈가 잘 되지 않아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었다. 적당한 때에 쉼표와 온표를 지키지 않으면 낭독이 아닌 소음이 된다. 처음부터 낭독 악보가 있었다면 낭독이 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현재 AI 오디오북이 많이 출시되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어 주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이 분산되는 느낌이다. 목소리와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북내레이터 과정을 겪으면서 귀로 밥을 먹듯이 이야기를 귀로 먹여주는 과정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었다. 청자의 귀에 익숙한 정서가 전달되는 과정은 기교도 테크닉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목소리와 공기가 만나 텍스트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과정이다. 도반님들의 초심낭독회 속에서 무한한 상상을 보았다. 다양한 연령대가 갖고 있는 삶의 소리가 깊고 따뜻해 편안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무한한 소재가 되어 상상을 즐겼던 경험이 되살아났다. AI기반의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이용한 오디오북과는 다른 고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영역으로 영혼의 울림의 시작점이 낭독이라고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