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의 발전 그리고 침실 프로듀서의 등장까지.....
인간은 왜 예술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희, 노동 그리고 주술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예술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난무할 뿐이다. 이렇듯 예술의 기원은 기록이 없기에 추측만 난무 할 뿐이지만 우리는 기록이 남아있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예술에 발전에 대해서 탐구해 볼 수 있다. 당시 예술은 여러가지 형태로 발전해왔지만 음악이라는 예술의 세부 장르의 발전을 예술발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음악이 왜 인간 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발전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그 당시 음악은 "시"라는 개념에 포함되어 있었다. 디오니소스적 무질서와 광기를 상징하는 "시"라는 예술은 질서와 고귀함을 상징하는 아폴론의 "조형"이라는 예술과 비교되었다. 질서와 광기 모두 인간의 본성이기에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찌 되었던 태초의 음악은 광기로 여겨젔었다.
디오니소스적 광기에서 출발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악은 굉장히 어렵고도 복잡하게 발전했다. 그리스, 로마 시대를 넘어 중세로 넘어가면서 종교와 결합된 음악은 엘리트층의 고유 향유물이었다. 숭고미로 대표되었던 당시의 음악은 종교의 권위 즉, 신의 권위와 함께 발전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감히 그 권위에 도전하기 힘들었다. 귀족에 자녀가 아닌 이상 악기는 가지기 어려웠고, 악기를 다루기 위한 트레이닝은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화성학을 필두로 한 음악이론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이 음악을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광기로부터 시작된 음악이기에 음악은 신의 권위를 표현하는 숭고하고도 웅장한 음악으로서만 발전해 나아가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을 음악에 담으려고 노력한 낭만주의 음악을 시작으로 음악은 신의 권위로부터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세기, 근대에 와서는 완벽하게 그 권위에서부터 음악은 벗어남과 동시에 디오니소스적 광기와 아폴론의 질서 정연함을 합쳤다. 그래서 근대의 음악은 질서 정연하게 발전된 음악이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여과 없이 음으로서 표현한다.
디오니소스적 광기와 아폴론의 질서 정연함을 합친 근대의 음악은 권위에서 탈피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일상 깊은 곳까지 자리하게 되었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번화가가 있을까?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 음악이 있으며 음악은 이제 모두가 즐기고 향유하는 대중문화의 큰 축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음악이 과연 광기에 측면에서 음악의 대중화의 가장 큰 기여를 했으며 질서 정연함의 측면에서 음악이론을 발전시켰을까? 블루스로부터 파생된 락을 우리는 광기의 측면에서 음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현대 전위음악이 음악이론을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음악의 발전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태어난 음악, 바로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해서 디오니소스적 광기와 아폴론의 질서 정연함이 음악속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인즉슨, 전자음악의 발전으로 인해 DAW(Digital Audio Workstation) 이 등장하게 되었고,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젔던 음악 창작의 기회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음악 창작의 기회가 모두에게 열리면서 음악은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자신만의 곡을 만들고 자신의 광기 즉, 감정들을 여과 없이 드러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음악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음악 구성의 등장은 기존 음악의 질서 즉, 구성을 재정립했다. 그렇다면 전자음악의 발전은 과연 음악의 대중화와 이론 발전 측면에서 어떠한 의의를 가지고 있을까? 전자음악이 발전한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그 의의를 알아보려고 한다.
전자음악은 어떠한 방법으로 기존의 어렵고도 숭고한 음악 체계를 부시고 모두에게 창작의 기회를,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제공했을까? 이는 전자음악만을 위해 기존의 소리 체계와 창작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 체계를 창조한 작곡가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카를 하르츠 슈톡하우젠과 이나 필립 글라스 같은 현대 작곡가들이 바로 그 예시이다.
슈톡하우젠은 테이프 레코더와 같은 전자 기기를 이용한 음향 실험으로 새로운 소리를 이용한 작곡을 해 나아갔으며 초기 전자음악의 소리적 기틀을 다저 놓았다. 그가 다저놓은 기틀은 여러 작곡가들과 소리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이 되었으며 영감을 얻은 사람중 하나인 무그 박사는 신시사이저를 만들어내었으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소리들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무한한 소리의 가능성을 품은 신시사이저의 발전은 음악계 일대의 혁명을 일으켰으며 전자음악이란 새로운 음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Kraftwerk, Giorgio Mordo, Jean Michel Jarre와 같은 아티스트들이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을 대중화시키고 다양한 형태의 전자음악이 작곡되기 시작하면서 이에 발맞춘 여러 가지 종류의 신시사이저가 발명되었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신시사이저의 발전은 호환성의 문제를 일으켰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신시사이저 메이커에 종속되지 않은 보편적인 인터페이스 표준 규격인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 등장했다. MIDI를 통해 전자악기 사이에 통신을 할 수 있게 됨으로 표현과 창작의 가능성이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점은 바로 MIDI가 세상에 등장할 때 즈음 개인용 컴퓨터가 급격하게 보급되기 시작되었다는 점인데 이는 전자악기가 아닌 개인용 컴퓨터에 장착할 수 있는 MIDI 인터페이스가 개발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에 장착된 MIDI는 그 당시 개발되어지고 있던 DAW(Digutal Audio Workstation)과의 연계를 통해 작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신시사이저 혹은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MIDI신호로 변환하여 DAW에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쉽게 말하자면, 오선지에 음표를 이제는 컴퓨터에 MIDI신호로 대신해서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자음악의 발전을 통한 기술적 진일보는 어려운 화성학과 음계를 배우지 않고 MIDI 신호만을 이용해 작곡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러하게 쉬워진 작곡은 기술발전이 이루어진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음악이 급격하게 대중화된 실질적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음인 전자음의 등장과 작곡의 간편화로 이루어진 음악의 대중화만으로는 음악이 완벽할 수 없다. 이에 맞춘 이론적 진일보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정한 구성이 없는 음악은 그저 난잡한 소리의 모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립 글라스라는 현대음악 작곡가는 새로운 소리와 작곡의 간편화에 최적화된 새로운 음악의 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그 형식은 바로 미묘한 음악의 변화 - 멜로디의 반복 - 절제된 화성법으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음악 형식이다. 미니멀리즘의 등장은 음악의 길이를 우리가 지금 듣는 대부분의 음악의 길이인 3~4분 내외로 만들며 음악이란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무한한 소리의 가능성을 품은 전자음과 "단순한 음악 구성"인 미니멀리즘이 합해진 음악인 전자 음악은 표현과 창작의 가능성의 확대를 이루어 냄과 동시에 구성의 단순화로 음악 창작의 어려움을 한층 덜어내었다. 그 뿐 만 아니라 DAW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이제 누구나 관심이 있다면 여러 가지 DAW (Cubase, Logic, Ableton Live 등)의 사용방법을 배워서 자신의 곡을 만들 수 있다. 필자의 경우에도 Ableton Live라는 DAW의 사용법과 작곡을 배운 지 3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곡을 만들었다.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유년기부터 훈련받아야 했던 시대를 생각해본다면 음악은 정말로 만들기 쉬워졌다.
만들기 쉬워진 음악 덕분에 기존에 음악을 만들던 전문적인 "작곡가"라는 직업이 Bedroom Producer 즉, 침실 작곡가의 등장으로 그 입지가 좁혀지고 있다.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일정기간 이상 받아 학사를 딴 뒤 "작곡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예전과는 달리, 누구든지 침실에서 컴퓨터로 음악을 만든 다음 "Spotify" 혹은 "Soudcloud"와 같은 음원 공유 사이트에서 자신의 음악을 공유해 이름을 알린 후 작곡가로 거듭날 수 있는 상황이다.
Kygo라는 아티스트는 15살까지 피아노를 배웠지만 작곡을 정규적으로 따로 배우지는 않았다. 그는 작곡을 "Logic" 이란 DAW를 사용하는 방법을 독학하는 과정 속에서 배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Kygo와 같은 아티스트가 세계적인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닌, 새로운 작곡 방식인 "샘플링"이라는 기법에 등장 때문이다. 샘플링은 기존에 있던 곡의 일부 음원을 잘라내 새롭게 가공하고 배치하는 작곡 기법인데 이걸 나쁘게 말하면 기존의 소리를 그저 재배치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Kygo라는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리가 음악에서 확고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만 기존의 유명한 팝송들을 자신만의 소리와 섞은 "리믹스"를 통해 유명해진 것으로 보아서 완벽하게 자신만의 소리를 이용한 작곡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도 샘플링을 이용해 기존의 소리를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샘플링이라는 기법은 기존에 있던 곡이나 소리들을 가져다 쓰는 것 이기 때문에 모든 예술가들이 민감한 "표절"논란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중독적인 훅으로 2015년에 손꼽는 히트곡이 된 "거북선"은 유명한 아이돌 출신 스타 래퍼인 "지코"가 작곡했다. 이 곡에 랩을 하게 된 송민호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지코가 천재 인 줄 알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누가 듣기에도 괜찮은, 잘 빠진 음악이다. 그러나 이 곡은 Qulinez의 Hookah라는 곡과의 유사성이 발견되자 곧바로 표절논란에 휩싸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C9kXHad9GXI
논란에 휩싸이자 이곡의 작곡가 지코는 "거북선"을 프로듀싱할 때 Fox Sample사에서 나온 샘플 CD를 이용했다고 곧바로 해명했다. 시중에 시판되는 음악 샘플 모음집인 샘플팩을 이용해 작곡한 곡인 게 드러나자 대중들 사이에서는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이러한 샘플링 논란은 항상 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기존의 소리를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샘플링을 진짜 작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음악인들마다 갈린다. 하지만 필자는 샘플링도 엄현한 하나의 작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소리를 재배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소리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는 작업은 충분히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다. 또한 작곡을 쉽게 만들어 사람들이 작곡을 이전보다 보다 쉽게 시작하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샘플링이란 작곡 방법의 등장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합의되지 않은 샘플 사용은 명백한 표절이지만 합의된 샘플 사용이나 유료 샘플을 구매해 사용하는 행위는 창작의 가능성을 넓힌다.
하지만 기존의 소리를 자신만의 소리로 재창조하여 창작의 가능성을 넓히는 진정한 샘플링의 의미는 퇴색되고 음악이 그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쉬워진 점을 이용하여 흡사 공장에서 찍어낸 거 같은 느낌의 비슷비슷한 음악들이 양산되었다. 이는 현재 EDM (Electronic Dance Music)으로 대표되는 전자음악시장에 찾아볼 수 있다.
https://soundcloud.com/daleri/epic-mashleg
스웨덴의 전자음악 듀오 Daleri 만든 이 54초짜리 믹스 (각기 다른 곡들을 섞어 하나로 만든 곡) 에는 무려 16개의 각기 다른 곡들이 섞여있다. 그러나 이 믹스를 듣다 보면 전부 다 다른 곡이라고 하기에는 한 곡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렇듯 전자음악은 음악을 쉬워도 너무 쉽게 만든 것일까? 음악은 대중에게 접근하면서 그 상업성이 부각되었고 이제는 잘 팔리는 음악의 공식과도 같은 3~4분 내외의 기승전결 구성으로 이루어진 음악만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이지만 음악도 개인감정의 표현 방식의 하나이다. 스스로를 작곡가라 지칭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 구성에 대한 고민이나 새로운 소리의 창작을 등한시하고 기존의 샘플들을 이용한 편리한 작곡만을 추구하는 상황을 예술적. 미학적인 측면에서 절대로 좋게 볼 수 없다. 전자음악의 발전이 어렵고도 숭고한 음악 체계를 부시고 모두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너무 쉬워진 음악은 음악을 급격하게 상업화시켰고 음악이라는 예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아폴론의 질서 정현함과 디오니소스의 광기를 합처 음악은 비로소 완전해졌지만, 이대로 음악이 쉬워진 상태로 흘러간다면 음악이라는 예술의 가치와 깊이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슈톡하우젠과 필립 글라스가 새로움을 찾는 과정에서 발전을 이루었듯이, 진부한 구성과 소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성과 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작곡과들과 대중들에게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