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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낌 Sep 24. 2016

"제주도 갈래?"

갑작스러운, 제주도 먹방 당일치기의 서막

"제주도 갈래?"

오랜 대화 끝에도 적절한 결론을 내지 못하다가, 지인(이하 : J)이 말했다.

7시간 후, 우리는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여행의 기억을 곱씹어보면,

작년 빵집 투어가 그동안의 여행 중 제일 급작스러웠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표현이 적절하게, 갑자기 서울을 떠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지인과 밤새 전화를 하다가 맛있는 빵이 먹고 싶어졌다. (그 지인이 특히 음식에 대한 묘사력이 엄청났다) 맛있는 빵을 먹고 싶은데, 통장에 잔고가 거의 없었다. 생각해보니, 큰 은행엔 통장이 하나씩은 있음이 기억났다. 통장 여러 개에 흩어져 있을 푼돈을 셈해보다가, 7만 원이나 들어있던 노다지 통장을 발견했다. 그 당시 내일로 기차 티켓이 50% 할인하고 있었기에, 남은 돈으로 첫 번째로 들렀던 대전 성심당에서 부추빵과 튀김 소보루가 반씩 들어간 빵 한 상자를 샀다. 그다음에 갔던 군산 이성당에선 더 많이 샀고. 계획 없이 시작했지만, 빵이 넉넉하니 마음도 풍족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의 손도 가득 찼던 여행으로 기억한다.



09월 22일, 22시 

저녁 운동을 하고 돌아오며 J와 이야기하는데, 23일에 쉰다고 했다. 보기로 했고, 점심때쯤 밥을 한 끼 먹겠구나, 생각했다. 산채나물정식과 에그 베니딕트, 서울의 줄 서서 먹는 맛집을 찾아봤는데 이렇다 할 곳이 딱히 없었다.

 

그때 J가 제안했다. “내일 제주도 갈까?”

당황했지만, 내가 대답했다. 좋다고, 그러자고.

다른 사람이 가자고 했으면, 진지하게 생각해봤을 것이다.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다 좋다고 하진 않는다. 대체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정된 일이 있었지만 처음 J가 시간이 있는지 물을 때, 그저 가볍게 밥 한 끼 할 줄 알고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J가 나를 만나고자 하는 때엔 가끔 선택과 포기가 뒤따른다. '네가 말하는 그 애정이 진짜 있나 보자'라고 시험받는 느낌일 때도 있는 것이다. 정작 J는 내가 처한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시험할 마음도 없고, 그저 내 시간이 되는지 알고 싶은 것뿐이다. 또 한 번은, 듣고 싶은 강연이 있어서 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었다. 만나 뵙고 싶은 대표님이었고, 존경할만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던 것이다.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J가 물었다. "혹시 내일 시간 돼?" 그 질문을 받으면 '어떤 것이 중요하고, 하고 싶은가' 중에서 내 마음을 놓고 저울질한다. 대안을 찾을 수도 있지만 답은 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강연이고, 하고 싶은 것은 J를 만나는 것이다. 인간적인 호감이 있기 때문에, J를 좋아하기 때문에, 정 급한 일이 아니면 선택은 대체로 J로 기운다. 이번에도 J를 만나는 안을 선택했다.

제주도 이야기가 나온 건, 22일 11:30분이었다. 비행기 표를 잘못 선택해 다시 결제를 하니, 00:30. 막상 결제하는데 웃음이 났다. 비행기를 이렇게 급작스럽게 결제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비행기가 이륙하기 7시간 전에 항공편을 예약하는 건 더욱이. 비행기를 타본 적도 많지 않거니와, 적어도 여행 2주 전에는 항공권이 결정되어있곤 했다.



배가 고팠다.

비행기 타기 전에 달걀을 반드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이어트 중이니 새벽에 무언가를 먹을 수 없어서, 준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찐 달걀을 떠올리면서 J와 함께 깜깜한 새벽에 버스를 타러 가던 날이 생각났다. 해가 뜨기 전, 캄캄한 스페인의 폰페라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그 전날에 준비한 찐 달걀을 나누어먹었다. 그런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런 물건이나 상황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구체적으로는 찐 달걀이나 J의 형광 주황색 트레이닝복이라던지. 그런 것들.

새벽 한 시에 달걀을 삶았다. 달걀을 삶은 후 생각해보니 사 먹을 수도 있었는데, 그땐 그게 당연했다. 반드시 달걀을 쪄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모든 게 그렇더라. 지난 뒤에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 아닌데.




7시에 비행기를 타야 했고,

6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고, 집에서 공항까진 1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4시 반엔 일어나야 한단 계산이 나왔다. 이미 1시가 넘었다.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J와 밤을 새웠다.

여행 준비를 하고, 해야 할 일을 했다. 여행을 함께 가는 J에게 기대를 담은 간략한 엽서를 쓰고, 가방을 챙기고, 입을 옷을 꺼내놓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 두 시가 되고, 두 시간이 남았다. 할 일은 많으니 도리어 시간이 짧았다. 읽었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인상적인 구절을 문서로 만들었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났다. 급히 씻으니 어느새 4시 35분.


요금을 할인받는 새벽에 버스를 탄 것도 오랜만이었다.


첫 차는 4시 54분.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7분. 서둘러야 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첫 지하철도 놓친다. 뛰어서 첫 차 세이프. 버스와 지하철 사이엔 간격이 있어서 순조로웠다. 공항에 먼저 도착해있던 J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그린 달걀을 주었다. J가 웃었다. 달걀 껍데기를 까 보니 달걀이 펜 색인 초록으로 물들어 있어 적잖이 당황하긴 했다. 달걀을 그림으로 가득 채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J와 다른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제주에서 만날 우리가 기대됐다. 여행지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기에, 우연히 만나는 것 같은 상황이 재미있었다.


제주의 파란 하늘


제주공항에서 J와 차를 빌리러 갔다.

J가 차를 빌렸고, 운전도…. 여행 일정은 J가 이미 정해두었기에(J에게 미안하게도 내가 기여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 일정을 따랐다.

나는 제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제주라고 하면, 고등학교 수학여행, 중학교 때 여행지, 부모님 신혼여행지, 친구 부모님이 사시는 곳, 17년 여름에 놀러 갈 곳. 이 정도의 키워드가 전부일 정도로 아는 것이 없었고, 그저 먼 느낌이었다.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이어서는,

제주여행에서의 감상을 적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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