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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Nov 13. 2018

낭만과 절망, 그 후에 오는 것들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영화 <비포 미드나잇>


책을 들춰보기도 전에 감이 왔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제목부터 열광했을 것이다. 부끄럽지만 한 때는<라이크 크레이지> <우리도 사랑일까> <블루 발렌타인> 과 같은 영화만 줄줄이 이어보며 사랑에 통달한 척, ‘쿨’한 척 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은, 꿈만 같고 아름다운 연애를 끝내고 나면 곧 무시무시한 결혼 생활에 접어들 것이다. 빨리 그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짓궃은 마음으로 느릿느릿 초반부를 읽었다. 드디어 60페이지 즈음, 라비는 커스틴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혼자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산만한 파티를 끝내고 혼자 걸어오는 귀갓길,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흘러가는 일요일, 아이들 때문에 녹초가 되어 대화를 나눌 기운조차 없는 부부들 뒤를 따라다니는 휴가, 누구의 가슴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쓸쓸한 깨달음은 이제 족했다.


그랬다. 이런 내용은 이미 많이 봐서 다 안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여기에서 마음에 동했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가끔 찾아 드는 공허함이나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다시 말해 삶이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현재 비연애/비혼 상태인 내가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무심히 보내는 일요일에 느끼는 것과 거의 똑같은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라비가 그 ‘쓸쓸한 깨달음’의 답으로 결혼을 받아들이게 될지 궁금해졌다. 

각오를 하고 집어 든 이야기는 기대보다 덜 격정적이었고,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저자가 처음부터 친절하게 알려준 것처럼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내용이고, 그 모든 상황에서의 그들의 행동과 심리 상태를 파헤치고 분석하며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이 소설 속 결혼 생활에서 가장 큰 사건은 라비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일일테지만 이 사실은 누군가에게 밝혀지지 조차 않는다. 다만 그는 그 일을 기점으로 커스틴과 결혼 생활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조금 환멸이 들기도 했다.) 즉, 이 소설은 딱히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고도 결혼에 대한 거의 모든 환상을 깨부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자주 멈추어야 했다. 그 지극한 평범함과 ‘별 것 없음’이 힘들었다. 서로를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같이 밥을 먹고 아이를 돌보는 모습은,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더 비극인 것 같았다. 

영화 <비포 미드나잇> (2013) 포스터


같이 본 영화 <비포 미드나잇>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을 보며 자랐고, 제시와 셀린느를 인생의 롤커플(?)처럼 생각할 만큼 이들을 동경하는 내가 <비포 미드나잇>을 보며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돌이켜보면 <비포 미드나잇>은 러닝타임 내내 ‘흘러가는 시간’이나 ‘영원한 사랑은 가능한가’ 같은 주제를 언급하는데, 확실히 전작과는 달라진 두 사람의 치열한 변명처럼 들렸다. 우연히 기차역에서 만나고, 운명적인 만남을 약속하고, 우연히 서점에서 재회하는 말도 안 되는 확률로 사랑에 빠진 커플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한층 평범해졌기 때문이다. 그만 끝내자는 말을 내뱉으며 살벌하게 싸우던 연인이 갑자기 웬 농담 따먹기를 하고 별안간 영화가 끝나 버렸을 때는 조금 황당하기도 했다. 제시와 셀린느는 화해한 것일까? 서로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을 그만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함께 부딪히며 살아가는 한, 두 사람은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영원히 싸울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생겨나고 사라지며 흘러간다. 그 자체가 굳이 시리즈의 3편을 만들어서까지 말하고자 했던 제시와 셀린느의 ‘그 후의 일상’인 것 같았다. 


영화와 소설 모두,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흐르면서 누구나 겪는 좌절을 치열하게 이야기한다. 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의 가장 훌륭한 점은, 그 절망을 가볍게 다루지도, 끝내 비관적인 결론을 내고 도망치지도 않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차라리 바닥까지 절망하고 나서 비로소 고개를 드는 편을 택한다. 언젠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이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진짜 문제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절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래도록 계속 절망해야만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를 너무 빨리 극복해버려서 문제가 아닐까? 이럴 때 문학은 좀 특별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은가. 온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을 가지세요'가 아니라 '너 똑바로 절망한 거 맞아?'라고 물어야 한다.” 이 소설은 어줍잖게 희망을 주거나 비관에 빠지도록 두지 않고, 절망을 끝까지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러고 나니 희망이 보인다. 라비가 가장 마지막에 와서야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 소설은 내가 들춰 보기도 전에 대충 상상했던 ‘쿨’한 내용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비정상적이고 삶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제서야 그 삶에 뛰어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제목의 ‘그 후의 일상’이란 말은 반복되는 지루한 날들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이해한 사람이 누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말한다.


불확실성을 의식하는 만큼 라비는 더욱 열렬히 이 햇살을 붙잡아두고 싶다.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모든 것이 명료하다. 그는 커스틴을 사랑하고, 그 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고 인내하는 법을 알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허약하다. 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권리가 없음을 알고 있다. 단지 잠깐 동안 만족을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인간일 뿐. 그는 이제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처럼 완전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결혼으로 완벽한 삶을 추구할 수 있을까? 사실 위의 문장처럼,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삶은 거의 어떤 것도 완벽해질 수 없다. 특히나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한 두 사람의 결합은 우리를 끝없이 절망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떤 순간만큼은, 완벽하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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