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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Mar 21. 2019

난 슬플 때 마라를 먹어

나의 스트레스 도피처


도피처가 필요한 날이 있다. “몰라,   모르겠고 일단 집에 갈래!”라고 외치고 싶은 . 오늘은 떡볶이를 먹어야지. 공포 영화를 봐야지. 술에 잔뜩 취해서 자야지. 아주 오랫동안  도피처는   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하나가  추가됐다. 오늘은 마라탕을 먹을 거야!


“마라는 자극의 끝이야.” 한 때 맛집 블로그를 운영했던, 음식에 조예가 깊은 친구 P가 나를 마라탕 집에 데려갔을 때도 여전히 못 믿겠는 기분이었다. 다들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는데… 특유의 향이라는 게 있다고 했지…. 음식에 관해서 만큼은 다소 보수적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여전히 (어릴 때와 똑같이) 떡볶이와 김치볶음밥이었다. 하지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마라샹궈 한 입을 떠 입에 넣었을 때, 나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뭔가를 하자마자 바로 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이건 감히 기적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자극의 끝. 내가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너무 우울하고 기운이 없는 날이어도 이걸 먹으면 다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심지어 마라 떡볶이라는 것도 있었다. 마라와 떡볶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단어 두 개를 합친 것 아닌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그렇게 마라 데뷔(?) 후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라를 먹으러 갔다. 마라를 조용히 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게가 떠나갈 듯이 웃고 욕하고 떠들면서 먹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맛이다. 그중 한 번은 친구들과 성격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맞아,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지 않아서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해... 근데 계란 볶음밥 더 시킬까? 언젠가 혼자 마라탕을 먹는 날도 오겠지만, 이런 기억들이 선명히 남아있다면 좀 덜 외롭지 않을까. 요즘은 이상하게 별 것도 아닌 일에 이렇게 감상적인 사람이 된다.


새로운 음식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마라와 함께 최근 도전한 양고기는 별로였다. 양갈비가 아니라 양꼬치부터 시작했어야 했어... 양고기 매니아인 P가 안타까워했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그 모습이 조금 웃겨서 또 웃었다. 내 도피처는 마라탕과 마라샹궈와 마라 떡볶이와, 그리고 나랑 같이 밥을 먹고 이 맛있음을 모른다고 슬퍼하고 같이 욕하고 같이 웃어주는 내 친구들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요즘은 별로 우울할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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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도전 일기

늘 새로움을 갈망하는 인간의 하찮은 도전 일기. 목표는 오로지 꾸준한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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