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소리 한다지만 배고프지 않은 건 사실이다
대기업 회사 생활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무기력하고 일이 지루하며 이상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선배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해 주었다.
흔히들 3·6·9 슬럼프라고 회사생활 3년 차, 6년 차, 9년 차 때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오고 무기력해진다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왜 간격이 3년인지 궁금했으며 또 12년 차, 15년 차 슬럼프는 왜 없는지도 궁금했다. 추측하건대 기간이 3년인 것은 각 직급별로 일이 익숙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또 일 외적으로도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10년 차 이상부터는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오더라도 타 분야로의 이직 또는 창업의 리스크가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주변 환경, 부양가족의 유무), 아예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회사 동료들이 나에게 준 솔루션은 '버티는 것'이었다. 괜찮아질 때까지. 그러면 회사를 꾸준히, 오래오래,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버티는 놈이 이긴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긴다'라는 표현은 기성세대가 추구하는 성공의 기준에 가깝다. 물론 과거에는 물질적 결여를 극복하기 위해 큰 울타리 내에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태는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지루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기성세대들이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라고 젊은 세대들에게 핀잔 주는 것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배고프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슬럼프라는 것은 나에게 어떠한 변화가 있다는 신호이다. 그 신호의 본질을 파악해 나에게 일어난 변화의 원인을 생각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즉 슬럼프가 왔을 때는 그 신호를 진정으로 마주하고 고민해야지, 그것이 무뎌질 때까지 무조건 버티는 것은 병의 초기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진통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3년 차에 무사히 지나가더라도 6년, 9년 차 슬럼프처럼 추후에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 생활에서 슬럼프가 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슬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내면의 목소리가 "나 할 말 있어요!"라고 나에게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반겨야 한다. 내가 들었던 한 수업에서는, 내가 왜 무기력하지? 내 주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가? 내 일에서 의미를 못 찾아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이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가치를 가져다 주지? 등 계속적으로 Why?를 던져가며 나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그를 만나서 이야기해봐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먼저고 그 후에 주변 사람과 환경을 나의 관점으로 들여다보아야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필자의 경우는 오랜 나와의 대화 끝에 '도전'이라는 가치가 내 삶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정의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환경에 스스로를 주저 없이 내밀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고여있고,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환경에서 주저 없이 나올 수 있는 용기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퇴사했다. 남들이 말하는 3년 차 슬럼프를 못 이기고. 하지만 나는 슬럼프라는 단어를 기회라고 바꾸고 싶다. 나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중 하나. 그래서 나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자면, 3년 차 슬럼프는 내면의 나와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이며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전환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