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스타트업, 뭐가 다를까?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에 입사한 지 3주가 지났다. 내 생에 이렇게 밀도 있고 빠르게 지난 3주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런 속도로 계속 가다가는 지금 느끼는 날것의 생각과 감정들 역시 빠르게 옅어질 것이 자명했기에, 그게 싫어서 뭐라도 기록으로 남기고자 노트북을 켰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각각의 특성상 환경, 조직 및 시스템이 다를 수밖에 없다지만, 나의 경우에는 직무까지 새로웠기 때문에 정말 모든 것이 신세계였다. 그래서 그 새로움들과 3주 동안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본격 "대기업 VS 스타트업" 비교를 해 보고자 한다.
어느 한쪽이 더 좋다가 아니라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글을 썼다. 가능하다면, 이 글을 통해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입사, 이직을 하는 사람들의 막막함과 생소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무언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기업에서는 그 영향력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 업무 프로세스는 이미 짜여 있고, 그 프로세스에 익숙해지고 조금만 응용한다면 일을 잘 한다 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일은 내가 아닌 그 누가 와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반대로 지금 회사의 경우, 프로세스 자체가 거의 없다. 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대기업에서 '익숙함'이 일을 잘 하는 척도였다면, 스타트업에서는 익숙함, 관성에 의해 일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왜 이 일을 해야 하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1%라도 개선할 여지가 보인다면 실행해야 한다.
나는 확실히 후자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대기업의 경우, 학교와 마찬가지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 지각이나 결근 등은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대기업에서 중요시 여기는 성실성에 위배되므로, 첫인상이 중요한 신입사원이라면 특히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다. 근태가 인사고과에 반영될 정도로 매우 중요시되는 것은, 대규모 인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다.
스타트업의 경우, 규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비교적) 매우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편이다. 우리 회사 출퇴근의 경우 오전 10시 - 오후 7시로 가이드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특별한 회의가 있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를 해도 무방하다. 모바일 어플을 만드는 회사의 특성일 수 있으니 대기업과 상대적으로 차이가 있구나 정도로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대기업의 경우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보고라인이 길 수밖에 없다. 사원-대리-과/차장-부장-임원으로 이어지는 보고체계는 처음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규모가 큰 기업의 의사결정 측면에서 보면 수직적 보고체계가 불가피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다 보니 비전/가치 공유 등 팀원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비효율적인 소통은 회사의 존립에 위기를 가져온다. 우리 회사의 경우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데,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도 측면에서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걸 질문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전 회사에서는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들지 않는다.
정당한 노동을 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는 노동자에 입장에서 노동의 질만큼 중요한 것은 보수의 질일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현재 일하는 스타트업의 연봉은 전 직장의 1/3 수준. 저축의 금액부터 생활방식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있다. 따라서 연봉과 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기업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세 토막 난 월급과 전 회사에서 저축해 둔 돈으로 연명 중이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내가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던 이유를 꼽으라면 2가지일 것 같다.
1. 작은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 내가 기여를 하면서, 나 역시 성장할 수 있음. 그 사실이 즐거움
2. 전통적인 의미의 '안정적인 직장'은 역설적으로 변화가 빠른 지금, '위기의 직장'일 수 있음
결론적으로 입사한 지 3주 차에 접어든 지금, 내가 생각했던 직무와 직장의 모습에 대 만족 중이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나는 어떤 것들을 배울까?
내가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감독이라지만, 감독 조차 결말을 알 수 없는 영화 같은 삶을 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