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동 Outro
매 시즌, 아이들과 함께 캠핑을 떠나고,
여행과 견학을 다니며,
각자의 깜깜한 현실 속에서
별빛 같은 꿈들을 함께 수놓았다.
우리들의 재미난 상상으로 채워놓은
꿈과 미래들은 우리가 함께 하는 은하가 되었다.
가장 가까운 나이의 어른으로,
때로는 우울과 불안에 함께 아파하는 친구로,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알려주곤 했다.
학교에선 선생님, 학교 밖에선 동네 사장님으로.
학원이나 청소년 기관에선 선생님, 강연자로.
누군가에게는 언제든 부를 수 있는 편한 형으로.
청소년과 청년들 곁에서 언제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들은 깜깜한 세상에 두려워하고, 진정 공감해 줄 어른을 찾는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앞으로의 걱정 없이, 모범적인 삶을 살아오곤 했다.
다른 세대를 살며 어른들은 들을 수 없었던,
다른 삶을 살며 선생님들은 만질 수 없었던,
다른 공간 속에서 부모님조차도 볼 수 없었던,
그들이 느낄 수 없던 검은 양동이 속 세상을 매일 경험한다.
여러 글을 통해 '낭만'을 정의하고자 시도했다.
정의되는 단어라기보다,
단어자체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난 더 사랑하는 듯하다.
그 복잡한 의미들을 모두 담아내어 나는 '낭만'이라 오늘도 내뱉는다.
언제부터인가 매년 어른이 되어 찾아오는 제자들이 생겼다.
이 일을 적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함께 추억을 꺼내보고,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다 보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어른과 아이라는 구분조차 무의미하지.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가 만나 끝없는 우주를 유영하곤 한다.
오늘 이 순간에도 나는, 아이들로부터 깊은 낭만을 경험한다.
맨땅의 헤딩,
시행착오 덩어리,
매일 비싼 값에 배움을 사는 나라는 녀석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달리기를 이어가는 이들이 있다.
부족하디 부족한 대표가,
사유에 젖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노라면,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냐'라고 묻는다.
우리의 방향을 나에게 의지함이 버겁도록 감사하다.
종종 만화 원피스에 우리를 비유한다고 했던가.
해적단의 부선장 조로는 이야기한다.
'선장이 위엄을 잃은 해적단은 반드시 붕괴한다.'
단언컨대 한 번도 위엄을 과시한 적도 없거니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위엄을 잃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나의 동료들은 늘 나에게 위엄을 쥐어주었다.
언제나 나의 사유 끝, 나에게 방향을 묻는 동료들 덕분에, 우리는 붕괴하지 않는다.
각자의 꿈을 품고 한 배에 올라탄 우리들은,
각자의 분야에 서로 등을 맞대어 우리들의 상상과 꿈의 끝자락으로 달려간다.
그 무거운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벅차고,
그 따뜻한 믿음이 나를 늘 안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벅차도록 기쁘다.
맨바닥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모든 팀원들로부터 나는, 깊은 낭만을 경험한다.
독특한 몽상가에서 꿈을 이뤄가는 사나이로,
저돌적인 호랑이에서 여우 같은 곰으로 성장하는 모든 과정,
나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모든 순간 나는, 그들에게 깊은 낭만을 경험한다.
교무실에서 열변을 토하며 15명의 학생을 겨우 만났던 나는,
30여 명이 조금 안 되는 교실에서의 무대를 허락받았다.
30여 명이 조금 안 되는 교실에서의 무대는 콘서트 홀이라는 100여 명 정도의 무대가 되었고
100여 명 정도의 콘서트홀은 1000여 명 정도의 강당으로 성장했다.
지인들을 통해 기회를 겨우 얻었던 나는,
지역사회 곳곳에서 기회를 얻기 시작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무대를 펼치던 나는,
전국투어를 타니며 방방곡곡 청춘들을 만나러 다닌다.
일반학교부터 특성화학교,
대안학교와 국제학교, 위기교실까지.
더 나아가 선생님들과 기관, 전문가들까지도.
그들에게 나의 목소리를 전한다.
누군가는 현실감 없는 상상일 뿐이라며 상처 내던 그 장면들이,
이제는 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다.
내 목소리를 전하는 사이즈가 부피를 더해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나의 상상 속 이 커다란 목소리는 여전히 우주를 넘나 든다.
불편하리만큼 커다란 꿈을 외치는 나의 모습 속에,
늘 전투적으로 세상을 주워 담아 온 나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불도저 같은 실행력으로,
'그게 될까?'라는 질문에 늘 추진력으로 답했다.
넘어지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늘 이야기했다.
언제나 함께 걷고 함께 넘어지며 함께 일어나 함께 달려가겠노라.
아이템 하나에도 1.0부터 0.5 단위로 검증과 개선을 반복한다.
그렇게 5.0, 6.0에 다다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때로는 AI와 친한 친구와도 하지 못할 6~7시간의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현장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뒹굴고 또 뒹굴었다.
실제 하는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의 세계를 깨기 일쑤였고,
합리적인 낭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의 모든 경험, 프레임단위로 체감했다.
괴로웠으나 사랑했고, 사랑했으나 슬프지 않았다.
인생을 갈아 넣는 이 모든 과정 나는, 스스로에게 깊은 낭만을 경험한다.
벼르고 있는 무대들이 많다.
모든 무대 하나하나 나의 발자국을 담을 때까지,
모두가 가슴속에 품고 있으나, 존재를 부정했던, 그러나 누군가 지키기를 바라는,
그 무엇인가를 내가 늘 지키겠다.
그 무엇인가를 우리, 낭만이라고 하자.
그대들이 붙여준 여러 별명들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
아이들이 지어준 나의 수식어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꿈을 꾸겠다.
'노낭만 노필근'
'낭만사나이 필근쌤'
'필근쌤, 빅딜로 와라'
'필근쌤은 오늘도 낭만을 찢어'
차세동 Outro를 작성하며,
마찬가지, 독자들과 3가지 약속을 한다.
1. 나는 더 성장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낭만 넘치는 바보로 살아갈 테지만 더디더라도 꼭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우연히라도 나를 보게 된다면, 한 번 이 약속이 지켜졌는지 살펴봐주기를.
2.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대화라도 나누면 실마리가 보일 것 같은 사람' 혹시 나의 글로 당신들께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느꼈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라. 꼭 답하겠다.
3. 고작 글로 당신을 만났으나, 나는 앞으로 평생 그대들을 위해 살아가겠다. 그러니 삶이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 때, 한 번은 나를 떠올려주길. 고작 글쓴이였던 나마저도 그대들을 위해 살아가겠다고 하지 않는가.
이 세상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무대에서 나와 3가지 약속을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도 약속했으니, 나는 오늘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1. 세모난 동글이, 차세동이 된다. 당신은 세모와 동그라미 안에 어떤 의미를 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