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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세동 May 29. 2023

아 가난하다, 가난해

차세동의 이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 우리들의 꿈이 남겨진 아지트. 드림라운지.


나에게 '돈'은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내가 지닌 수많은 수업 커리큘럼과 프로그램 속에서도 '돈'을 다루는 내용은 꽤 나 비중 있다.

스타트업 필드에 뛰어든 이상 나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먼저 한 가지를 밝히고 시작하자.

'교육학도에게 창업이란'에서 적었던 것처럼

돈을 벌고자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에 절대 부정적이지 않다.

그 또한 누군가에게 고귀한 사명이며 나에게는 나만의 사명이 존재할 뿐이다.)


특히 혁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사실 '돈'을 벌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생각이라기보단 내가 경험한 세상이 그렇게 일러주는 듯하다.

잠시 'EO영상에 등장하셨던 스푼라디오의 최혁재 대표님 말씀'을 적어본다.


예비 창업자라고 하면은 제가 맨날 똑같이 얘기하는데
창업을 안 하셨으면 좋겠고요.
(중략)

3년 동안 급여는 없을 거라는 각오와 준비를 하셔야 되고요.

'주말에 알바하면 되지 않냐?' 알바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회사 일 주 100시간 할 시간도 없어서..
(중략)

막 피눈물이 나오거든요


스타트업 생태계는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통 창업 3~5년 차 때 찾아온다는 데스밸리, 혹은 그조차 다다르지 못하고

죽음의 구간에서 고꾸라지는 스타트업들이 벅벅 쌓여만 간다.


큰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혁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너무 큰 리스크가 아닌가 하는 나의 생각이다.




'나도 당연히 선생님 될 줄 알았지'에서 적었던 것처럼,

창업 이전의 나는 입시필드에 자리했고 나이에 비해 비교적 많은 돈을 벌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창창한 미래를 보장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창업 이후 나는 드라마틱하게 가난해졌다.

나의 거처는 5평 컨테이너가 되었다. (나의 거처도 아니지, 기훈이와 함께 사는 공간)

그 과정 또한 적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눈물 나는 스토리들을 잠시 생략하자.

당시의 상황에 집중해보자.


차비가 없어 하염없이 걸었고,

식비가 없어 괜한 안부를 핑계로 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공간이 없어 하루 대부분을 버스와 기차에서 보내기도 했고,

쉴 곳이 없어 공원을 친구 삼기도 했다.


잠에 들기 위해 첫 차를 탔고,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부랴부랴 떠나야 했다.


한 번은 정신 나간 척

새벽 공기 섞인 비바람 속에서 춤을 추었다.


-


돈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고민이라는 것을 해본 계기가 있다.

한 번은 내가 아낀 동전들이 모여 1,400원을 만들었다.

그 돈으로 편의점에서 참치마요삼각김밥을 하나 사 먹었는데

황홀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나는 잊고 살았나 생각했다.

그새 올챙이 적 까먹고 비싸다는 음식만 찾아다닌 내가 부끄러웠다.


돈 걱정 없을 때,

나는 '먹는 즐거움'을 내 인생에 커다란 비중으로 두었기에,

나는 신나게 먹고 다녔다.

비싸다는 음식, 맛있다는 음식. 꼭 경험해 보는 나였다.

때로는 권태로울 정도였다. 비싸고 맛있다는 음식도 '그냥 그랬다'.


하지만 내가 아낀 동전들이 선물해 준 참치마요삼각김밥은 황홀했다.


다들 돈은 다다익선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실제 하지 않지만 모두가 실제 한다고 믿는 것 같아서,

돈이 다다익선이라는 건 당연한 사실인 줄 았았지.


하지만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나한테는 아닐 수도 있나?'

나는 1,400원의 참치마요삼각김밥으로도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인물인데

돈 때문에 이 정도로는 행복을 경험할 수 없는 인간일 수 있나?


나는 이 세상 많고 많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갑작스러운 부(富),

내 뜻이 아니거나 의도하지 않았던 부(富)는 경계하는 이유이다.


-


물론, 가난은 상상하는 것보다 힘들다.

나 따위가 '가난은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만큼 가난은 힘들다.

단지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생각한다.

이만큼의 감수성도 없었더라면 나는 나도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을 테지.


가난마다,

또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 상황마다

모두 다른 모양의 잔인함을 지녔을 것이다.


내가 경험한 가난은,

코로나 19까지 장기화되며 불가항력적으로 나를 찾아왔고,

2시간의 수면, 22시간의 노동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해일 같은 것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가난이 나에게 잔인했던 이유들을 몇 가지 적어본다.


1. 사람의 자존심을 찢어놓는다.

'돈'은 어느 정도의 '여유'를 보장한다.

여유 없는 삶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조급한 마음은 나를 갈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내가 되어야만 하는 모습을 불가항력적으로 맞이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상처받고,

모두가 괜히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그 속에 며칠, 몇 달을 유기당하고 있노라면

나의 자존심은 찢어져 흩날리고, 

나의 자존감은 구겨지고 타버려 재가 되어있다.

후에는 밥 한 끼를 위해서 염치없는 연락을 핑계 삼아

쓰고 싶지 않은 가면을 쓰기 일쑤였다.

치졸하고 옹졸해진 스스로를 마주하는 것은 괴롭고 아프다.


2.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자존심이 찢기고 자존감이 흩날아간 사람이 되었던 나는,

최대한 주변인들을 만나지 않으려 했다.

감정도 우울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러나 만나지 않아도, 혹여 만나더라도 나의 소중한 사람들은 나로 인해 상처받는다.

나의 말과 행동에는 가시가 돋아있고

나를 지키기 위해 수놓은 가시들은

언제부터인가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언제부터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은 무섭도록 빠르게,

경악스러울 정도로 소리소문 없이,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3. 나의 미래를, 나의 상상마저도 먹칠한다.

늘 긍정적으로,

어떠한 위기상황도 한 판 뒤집기로 기회로 만드는 것.

어떠한 변수에도 유연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

모두 내가 잘하는 것이라 자부하는 것들이다.

이 속에서 나는 늘 누구도 넘보지 못할 커다란 스케일의 꿈을 그려왔고,

재미난 상상 속에서 친구, 동료들과 유영하기를 즐겼다.

하지만 가난은 나의 상상에 먹물을 뿌리고,

나의 미래를 검정으로 수놓았다.

눈앞에 고정된 정신과 육체는 나의 먼 곳을 깜깜하게 만들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즐거운 미래도,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을 생산하는 엔진 또한 꺼져버렸다.

검정색 양동이를 뒤집어 쓰고 나아가는 나는

바로 아래 좁은 틈으로 보이는 나의 발끝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다행히도 이제야 나는 이토록 깜깜한 미래와 상상들을,

나의 우주라고 믿으며 눈 감고 유영하는 법을 배운 듯하다.

이렇게 춤추는 듯한 유영을 계속하다 보면

그 속에서 별빛처럼 방향을 일러주는 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에게 때로는 의지하며 나의 우주 속에 여러 은하들을 새겨본다.


오늘도 나는 '돈'이 지닌 나만의 의미를 고민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였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돈'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의미였을 수 있다.


혹시라도 나의 이야기가 작은 느낌표나 물음표를 선물했다면,

당신도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가.

실체 없는 누군가들의 이야기를 믿기보다는,

실제 하는 나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는 것은 어떤가.

당연하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정녕 나도 그런 사람일까?' 하는 재미난 낭만을 발휘해 보는 것은 어떤가.


오늘도 내가 번 '돈'은

수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꿈을 수놓는 데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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